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장(景章). 충주 출신. 민창식(閔昌植)의 아들이다.
1889년(고종 26)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90년 세자시강원 겸 설서(世子侍講院兼說書)가 된 이후 세자시강원 필선(弼善)을 거쳐 1891년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1893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그뒤 왕태자비궁대부(王太子妃宮大夫)·중추원일등의관·왕태자시강원첨사 등을 거쳤다. 1898년 홍릉제조(洪陵提調)가 되었다가 곧 궁내부특진관으로 임명되었다.
1898년 12월의 충청도 한산·서천 등지의 태풍과 해일로 인한 재해에 연루되어 1899년 3월 황주군의 철도로 유배되었다가 8월에 특별히 사면되었다.
그뒤 궁내부특진관에 다시 임명되었으며, 1900년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가 되었다가 1906년 예식원장례(禮式院掌禮)를 거쳐 중추원찬의에 임명되었다. 1907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어 칙임관 1등에 제수되었으며, 그뒤 곧 기로소비서장(耆老所秘書長)으로서 궁내부대신 임시서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