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1899년(광무 3) 5월 법부 민사국장(民事局長), 사리국장(司理局長)을 거쳐 1900년에는 회계원경(會計院卿)이 되었다. 같은 해 철도원감독(鐵道院監督)을 거쳐 1901년에는 궁내부협판이 되었다. 그 해 5월 특명전권공사에 임명되었으며, 다시 지계아문부총재(地契衙門副總裁)가 되었다.
1903년에는 지계(地契) 문제로 견책을 당했으나 1904년 4월에는 동지돈녕원사(同知敦寧院事), 예식원부장(禮式院副長)을 거쳐 이듬해 충청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그 후 경상남도 관찰사를 거쳐 봉상시제조가 되었으며, 칙임 3등관이 되었다. 1906년 6월에는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