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용의 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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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사건
1844년(헌종 10) 무인 민진용 등이 일으킨 반역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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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44년(헌종 10) 무인 민진용 등이 일으킨 반역사건.
내용

이 옥사의 중심인물은 민진용인데, 그는 서울 동부 흥덕동(興德洞)에 살았다. 철종 말기부터 헌종 초기까지 안동김씨(安東金氏) 세도정치는 주로 김유근(金逌根)·김홍근(金弘根)이 쌍주(雙柱)가 되어 좌우하다가 1844년 이들이 물러나자 권력에 틈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민진용은 이 틈을 이용하여 반역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그는 뛰어난 의술(醫術)로 전계부원군(全溪府院君) 이광(李㼅)과 원경(元慶) 부자(父子)의 돈독한 신임을 받고 있는 이원덕(李遠德)을 우선 포섭한 뒤, 뜻을 같이하는 박순수(朴醇壽)·박시응(朴時應)·이원덕 등 세 사람 등과 서로 결탁하였다.

1801년(순조 1)강화도 유배소에서 천주교를 신봉하다 정순왕후(貞純王后) 일파에게 부인 및 며느리 등과 같이 사사(賜死)된 은언군(恩彦君)의 손자 원경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하여 불궤(不軌)의 뜻을 품고 모의를 진행하였다.

민진용은 특히 하급의 무부(武夫)로서 이러한 계획을 관철하려고 동지를 규합한 뒤 반역당을 조직하여 흉악한 말로써 선동하는 한편, 주동자 네 사람이 같이 모여 은밀히 대역(大逆)을 꾸미다가 발각되어 그들은 모두 능지처참당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헌종실록(憲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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