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민태현(閔泰顯)의 아들이다.
음직(蔭職)으로 청하현감(淸河縣監) 등을 역임하다가 1885년(고종 22) 9월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등제한 뒤 그해 10월 홍문관부수찬이 되었다. 이듬해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었으며, 1887년 9월 사간원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사간원 재임시 여러 차례 직간(直諫)을 올리고 대사간을 사임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88년 4월 이조참의로 발탁되고 그해 8월 성균관대사성에 올랐으며, 이듬해 승정원우승지가 되었으며, 1892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가 되었다.
1894년 고부에서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여 전국적인 농민전쟁으로 비화될 즈음 지방관인 경주부윤의 외직에 있었다. 그리하여 동학농민전쟁 발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민씨척족들이 유배형을 받게 될 때 민치헌도 그해 6월 홍원현(洪原縣)에 정배되었다가 그해 9월 풀려났다.
1896년 중추원1등의관에 임명되고 칙임관2등에 서임되었으며, 1899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1900년 4월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이 되고 이어 칙임관1등에 올랐다. 그해 7월 회계원경, 이듬해 다시 궁내부특진관과 칙임관1등에 이르렀다. 시호는 효헌(孝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