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보(誠甫). 할아버지는 민중립(閔中立)이고, 아버지는 소윤(少尹) 민대생(閔大生)이며, 어머니는 고려 말의 전리판서(典理判書) 허금(許錦)의 딸이다.
1429년(세종 11)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처음 종부시직장(宗簿寺直長)이 되었다. 그 뒤 우헌납(右獻納)·정랑(正郞)·소윤·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등을 거쳐 성종조에는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및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441년에 외읍(外邑)의 공물을 대납한 일이 발각되어 종신토록 관리로 서용(敍用)되지 못하게 하는 폐고불서(廢錮不敍)에 처해졌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1453년(단종 1)에 이르러 관(官)의 독징(督徵)에 시달려 대납하게 됐던 정상이 참작되어 다시 서용되었다. 1455년(세조 1) 세조 즉위 후 공신 책봉에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올랐으며, 이후 첨지중추원사, 수원부사, 동지돈령부사, 행사직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