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태자태보(太子太保)를 지낸 박충후(朴忠厚)의 손자로,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박인량(朴寅亮)의 아들이다.
음서(蔭敍)로 관계에 진출하였으나 예종 때 예부시(禮部試)에 급제하였다. 정언(正言)·국자사업(國子司業)·이부시랑(吏部侍郎) 등을 거쳐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까지 올랐으며, 1134년(인종 12)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일도 있었다.
성품은 관후하여 남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며, 권귀(權貴)에 아부하지 않는 강직한 기품이 있었다. 형인 박경인(朴景仁)·박경백(朴景伯)과 더불어 삼형제가 모두 등과하여 박경산의 어머니는 매년 대창미(大倉米) 30석이 하사되는 은전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