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년(세조 1) 행사정(行司正)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1466년(세조 12) 평안도병마우후(平安道兵馬虞候)가 되고 경상우도수군절도사를 거쳤다.
1474년(성종 5) 야인들이 침입할 우려가 있어 평안도조전절제사(平安道助戰節制使)로 임명되어 창주진(昌洲鎭)·창성 등의 수비를 맡았다. 이듬해 야인 수천 명이 창주를 여러 겹으로 포위, 성이 함락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창성으로부터 정예 25기(騎)를 인솔하고 달려와 성 안의 군민을 규합, 필사의 노력으로 적과 싸워 격퇴하고 성을 구하여 그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평안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478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으며, 그 해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81년 함경북도병마절도사, 1484년 병조참판, 1487년 전주부윤, 이듬해 훈련원도정(訓鍊院都正) 등을 역임하고 1489년 전라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이때 나이가 70이 넘어 기력이 쇠약하였음을 들어 변장(邊將)으로 부적함을 주장하는 자가 있었으나 성종은 용력이 특이한 용장이므로 능히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1490년 다시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