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학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한인 사병과 청년의 초모 활동을 펼쳤던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9년
사망 연도
1978년
출생지
평안북도 정주군
주요 경력
충의구국군 참모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1990)
내용 요약

박승학은 일제강점기 한인 사병과 청년의 초모 활동을 펼쳤던 독립운동가이다. 중국 남방대학에 재학하다가 중국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과 협조하여 일본군의 주둔 위치와 소속 부대 병력 그리고 병력의 이동 규모 등에 관한 군사 정보 수집 보고 등의 활동을 하고, 동지 규합과 한인 사병 및 청년의 초모 활동을 전개하였다. 충의구국군 총지휘부 참모처의 주요 참모로 임명되어 한인 사병 10여 명을 한국광복군에 입대시켰다.

정의
일제강점기 한인 사병과 청년의 초모 활동을 펼쳤던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박승학(朴承鶴, 1919~1978)은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이다.

주요 활동

중국 남방대학에 재학하다가 중국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 환남참(晥南站) 및 연호조(燕湖組) 등과 협조하여 일본군의 주둔 위치와 소속 부대 병력 그리고 병력의 이동 규모 등에 관한 군사 정보 수집 보고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한 동지 규합과 한인 사병 및 청년의 주1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후 충의구국군 총지휘부 참모처의 주요 참모로 임명되어 한인 사병 10여 명을 한국광복군에 입대시켰다.

1945년 8월 초에는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중국 항저우〔杭州〕 주둔 일본군 1개 여단 병력을 상대로 격전을 벌여 큰 타격을 입혔으며,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주2주3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독립유공자공훈록』 5(국가보훈처, 1988)
주석
주1

사람을 불러 모음.    우리말샘

주2

건국 훈장 중 네 번째 등급.    우리말샘

주3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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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정인(춘천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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