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언이(彦而). 할아버지는 박계간(朴季幹)이고, 아버지는 박조(朴稠)이며, 어머니는 윤간(尹侃)의 딸이다.
1528년(중종 23) 진사가 되고 1540년(중종 3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6년(명종 1) 부수찬(副修撰)이 된 뒤 병조좌랑·호조정랑·사헌부헌납(司憲府獻納)·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병조정랑·이조정랑 등 여러 관직을 거치는 동안 청렴결백하다 하여 1551년 염근리(廉謹吏: 청렴하고 근면한 관리)로 뽑혔다.
이어서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사복시정(司僕寺正)·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병조참지(兵曹參知) 등을 거쳐, 1555년 충청도관찰사가 된 뒤 동부승지(同副承旨)·우부승지·우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57년 공조참판에 이어 황해도관찰사로 다녀와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다. 그 때, 명나라 사신 접대 등으로 인해 황해도의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이 지역의 피역자(避役者)가 늘어나고 관속(官屬)마저 유리하는 실정임을 들어 대책 마련이 시급함을 간하였다.
1559년 대사헌이 되고 이어서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대사성·이조참판·예조참판을 거쳐, 1563년에 다시 대사간이 되어 매관육작(賣官鬻爵: 관직의 제수를 부정으로 거래함)에 눈이 어두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원계검(元繼儉)의 파직을 상소하였다. 이듬해 형조판서에 오른 뒤 예조판서·금부당상·지중추부사·공조판서를 지냈다.
1567년 이조판서가 되고 이듬해 진하 겸 태자책봉사(進賀兼太子冊封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71년(선조 4) 병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지경연사(知經筵事)·예조판서·공조판서·형조판서·이조판서를 번갈아 가면서 역임하였다. 1575년(선조 8) 우참찬(右參贊)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