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박성규(朴性圭).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청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930년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건너가 1935년에 도쿄의 분카학원(文化學院) 미술과를 졸업하였다
1937년부터 1943년까지 서울에서 시적(詩的)인 표현의 파스텔화 개인전을 수차례 가졌으나 이 시기의 작품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다. 광복 직후 조선조형예술동맹(朝鮮造形藝術同盟)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1935년 매일신보 문화부 기자로 취직한 후 도쿄에 파견되어 근무하다가 1945년 귀국하였다. 1946년 삽화만화가들(이승만, 윤희순, 김규택, 정현웅, 안석주, 김용환, 조병덕, 한홍택 등)과 함께 소묵회(小墨會)를 조직했고, 1950년에는 김환기, 유영국, 남관, 김병기, 손응성 등과 50년협회 결성에 추천회원으로 참여했다. 1952년 U.N. 군사령부 전속화가로 일본에 체류하면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1972년 미국 인디애나주의 셀던 스워프 아트 갤러리(Sheldon Swope Art Gallery)에서 한차례 개인전을 연 뒤, 1975년 20여 년간의 일본생활을 접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이 시기 박일주(朴一舟)로 개명하였고, 1959년까띠아 그라노프 갤러리(Galerie Katia Granoff)의 전속 화가로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는 일본의 전통적 칠공예(漆工藝) 그림처럼 광택이 나게 그린 특이한 장식적 기법의 세미한 여인상 등을 집중적으로 연작하며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실현시켰다. 그 여인상들은 어릴 적 어머니를 생각하여 그린 것이라는 작가의 말 대로, 한국 여성의 아리따운 얼굴 모양에 흰 옷과 더러는 붉은 치마의 모습으로 정교하게 묘사되었다.
시대성을 초월한 환상적인 화면들은 1986년에 잠시 귀국하여 서울 예총화랑에서 가진 개인전을 통해 처음 알려져 주목을 끌었다. 그 뒤 1993년까지 국내에서 몇 차례의 전시회를 가졌다. 1994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유해를 청도에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