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아버지는 통덕랑 박명규(朴命圭)이다.
1812년 서북지방일대에서 불평이 많았던 홍경래(洪景來)가 반란을 일으켜 전국이 어수선해지자,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로 있으면서 당시 백성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고 있는 참설(讖說)을 이용하여 이진채(李振采)와 더불어 사당(私黨)을 만드는 한편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는 은언군(恩彦君) 이인(李裀)의 아들을 추대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건너가 군량조달을 꾀하였다.
3월에는 새로 수립된 정부군이 도성(都城)을 공격하여 서울의 지배층을 모두 살해한다는 등으로 민심을 선동하다가 체포되어 대역부도죄(大逆不道罪)로 참형(斬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