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자숙(子淑). 아버지는 부지돈녕부사(副知敦寧府事) 박거소(朴去疎)이며, 어머니는 청송심씨로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다. 어머니의 손위 누이가 세종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스스로 스승을 찾아 공부했고, 특히 무예에 뛰어났다. 음보(蔭補)로 충순위(忠順衛)에 들어갔다가 부호군(副護軍)으로 선전관(宣傳官)을 겸했고, 1460년(세조 6) 7월 무과에 장원해 훈련원부사(訓鍊院副使)가 되었다.
이어 훈련원지사(訓鍊院知事) · 예빈시소윤(禮賓寺少尹) · 부지통례문사(副知通禮門事) ·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를 역임하고 곧 지병조사(知兵曹事)가 되었다. 1463년 병조참의를 거쳐 1466년에 병조참판이 되어 오위(五衛)의 부총관(副摠官)을 겸하였다.
1467년 5월에 이시애(李施愛)가 난을 일으키자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 휘하의 평로장군(平虜將軍)으로서 황해도의 관군을 이끌고 문천(文川)으로 들어가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책록되고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졌으며 병조판서에 승진되었다.
1468년 9월 평안중도절도사(平安中道節度使)로 나갔다가 이듬해 호조판서에 임명되고 선성군(宣城君)에 봉해졌다. 1468년 10월 남이(南怡)의 옥사(獄事)에 공을 세워 정난익대공신(靖難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고 병조판서에 재임되어 서정(西征)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7월 다시 평양군으로 봉해지고 10월에는 전라도 포도주장(捕盜主將)이 되어 당시 창궐하던 도둑떼의 소탕에 공을 세웠다. 1471년 3월 성종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록되었으며 4월에 영안북도절도사(永安北道節度使)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양하였다.
1476년 3월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다왔으며 이듬해 윤2월에는 경기도관찰사로 부임했다가 들어와서 도총관이 되었다. 1477년 10월 문신들이 ‘불해문묵(不解文墨: 문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반대하는데도 이조판서에 발탁되었으며, 이듬해 3월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소양(昭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