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원(珍原). 자는 형옥(泂玉), 호는 양동(陽洞). 흥양(興陽: 전라남도 고흥) 출신. 아버지는 박희석(朴禧錫)이고, 어머니는 영광김씨(靈光金氏) 김극창(金克昌)의 딸이며, 김원행(金元行)의 문인이다.
1762년(영조 38)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764년에 성균관유생(成均館儒生)들이 소청(疏廳)을 개설하고 송시열(宋時烈)을 효종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케 하려고 상소할 때 소두(疏頭)가 되었으나, 사학(四學) 유생이 이를 먼저 시행하므로 이루지 못하였다.
곧이어 왕명으로 박세채(朴世采)를 문묘(文廟)에 종향(從享)하게 됨을 보고 이를 막지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황윤석(黃胤錫)과 함께 관재(館齋)에서 물러나와 김원행의 제자가 되었다.
뒤에 선영(先塋) 아래 정자를 짓고 학문을 연구하면서 학동을 모아 가르쳤다. 효성이 지극하여 정문(旌門)이 세워졌고,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양동유고(陽洞遺稿)』 5권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