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1986. 대구 출생. 기독교계 계성학교를 거쳐 평양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실전문학교 재학시 서양 선교사들에게서 성악과 작곡의 기초를 배워 「가을밤」·「골목길」 등을 작곡하였는데, 이 곡들은 동요의 초창기 작품으로 평가된다.
졸업 후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며 우리나라 선구적 시인 이은상(李殷相)과 함께 「미풍(微風)」·「님과 함께」·「소나기」·「동무생각」·「순례자」 등의 예술가곡 형태의 노래를 작곡하였다. 작곡 형식은 1920년대 초반에는 진취적이고 시의 선택도 유절가곡에서 자유스러운 형태를 채택하여 우리나라 예술가곡류의 효시 형태를 취하고 있다.
1925년에서 1931년까지 모교인 대구 계성중학교에 재직하면서 「오빠생각」·「오뚝이」·「하얀밤」·「맴맴」 등의 우리나라 동요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작곡하였으나, 이 가운데 윤복진의 작사에 곡을 붙인 50여 곡의 작품들은 윤복진의 월북관계로 6·25 전쟁 이후 가사가 바뀌거나 또는 금지되기도 하였다.
1932년 이후는 그의 음악세계의 제2기로서, 미국의 더스커럼(Tusculum)대학과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대학에서 합창 지휘를 배워 최초로 합창지휘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한 뒤 1936년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했으며, 1945년 전문 합창단인 한국 오라토리오합창단을 창단하여 1973년까지 지휘자로 활동하며 합창음악 발전에 기여하였다.
1955년 연세대학교에 종교음악과를 개설하여 기독교 음악교육의 초석을 쌓고,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 및 명예교수를 역임하였다. 1945년 이후 1973년까지 남대문교회 성가대를 지휘하고, 또한 1968년 이후 한국음악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서울음악제를 창설하기도 하였다.
박태준 작품은 동요 등 150여 곡으로, 정돈되고 아름다우면서 격정이 내재되어 있다. 문화훈장·서울시문화상·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