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15세기 말부터 번상병(番上兵)의 대립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대립이란 번상병이 보인(保人)에게 받아 온 조역가(助役價)로 타인을 고용해 대신 입역하게 하고 자신은 귀향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번상으로 인해 자신의 생활권조차 위협을 받게 된 군사의 편의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점차 각 관청의 서리 등 행정실무자들의 영리 행위로 자행되고 있었다. 또 대립가도 1인당 면포 1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법규와는 달리 15∼18필의 엄청난 것이었다.
이러한 엄청난 가포(價布)를 마련할 길이 없는 군사가 대역시키지 않고 스스로 복무하려 하면 관리들은 권한을 남용해 이를 방해하고 대립가를 강제로 납부하도록 하고 있었다. 16세기 초에 이르면 2명의 보인에게 1인당 7, 8필 이상을 거두어 번상하여서 배속된 역처(役處)에 납부하고 귀향하는 것이 번상병이 취하는 의무 수행의 일반적인 형태로 되고 있었다.
말단 관리의 강제적인 고액 대립가의 요구는 우선 보인의 도망과 유리를 야기시켰다. 다음은 보인이 없어진 정군 혼자서 대립가를 마련하다 감당하지 못하고 그마저 도망, 피역하게 되므로 군호(軍戶)의 파괴를 초래하였다.
또, 도망하고 없어진 군호의 대립가는 그 일족절린(一族切隣 : 군호 대상자의 이웃 일족)에게 전가되어 잔존한 그들까지 2중·3중의 부담에 견디지 못하고 도망하는 연쇄적 현상이 일어나 실제 군액은 공허한 상태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