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한 이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쇼치쿠[松竹]키네마 가마다[浦田] 촬영소에 입사해 5년간 근무한 후 1935년 귀국하여 「살수차」(1935), 「 한강」(1938), 「성황당」(1939)을 연출했다. 문화영화의 보급과 상영을 강제한 조선영화령이 1940년 시행되면서 그가 감독한 「승리의 뜰」이 상영되었다. 이후 「병정님」(1944), 「거경전」(1944) 등 상당수의 친일영화를 연출했다.
해방 이후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 조선영화건설본부에 참여했으며, 조선영화동맹과 영화감독구락부에 참여해 활동했지만, 실제 영화를 연출하지는 않았다. 6·25 전쟁 때 납북되어, 1950년 8월 27일 사망했다.
방한준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13·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670∼687)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