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서영관(徐永琯)으로 월영(月影)은 예명이다. 서울 중앙학교를 졸업한 후 현철(玄哲)이 ‘연극인재 양성’을 목표로 1924년 12월에 설립해 1925년 1월 15일에 개교한 조선배우학교 제1기생으로 복혜숙(卜惠淑)·양백명(梁白明) 등과 함께 졸업했다. 졸업 후 니혼(日本)대학 예술학부 영화학과에 입학했으나, 바로 중퇴하고, 토월회(土月會)에 입단했다. 토월회가 바로 해산된 후 토성회(土星會)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조선영화제작소, 대륙키네마, 녹성키네마, 중앙키네마, 태양극장, 명일극장, 동양극장, 고려영화협회 등 영화단체와 연극단체에 참여했다. 1930년대 후반 이후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조하고, 영화인의 통제를 위해 조직된 조선영화인협회의 이사로 참여했으며, 1941년 이후에는 「반도의 봄」, 「그대와 나」, 「조선해협」, 「젊은 모습」,「병정님」 등 다수의 친일영화에 출연했다. 해방 이후에는 재건 토월회, 극단 청탑, 극단 신청년 등에 출연하면서 1962년까지 국립극장 단원으로 활동했다. 1973년 2월 26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