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요지 면적 7,456㎡. 사기마을과 마을 뒷산에 4개의 가마터가 있는데, 이중 1개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며, 나머지 3개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굽던 조선시대의 것이다. 16세기에서 17세기 전반 무렵에 걸쳐 분장 · 분청 · 백자 · 상감백자 · 철화청자 등을 굽던 가마터가 이곳에 3군데 널려 있다.
대접 · 접시 · 사발 · 병 · 항아리 · 장군 · 잔 등 다양한 생활용 그릇의 파편들이 발견되었다. 그릇을 살펴보면 태토는 회색인데 모래 같은 잡물이 많이 섞여 거칠고 어두운 회청색을 면유약으로 두껍게 칠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이곳의 도공들을 납치해 가고 눈박이 사발잔 등 많은 도자기를 강탈해 갔는데, 일본의 다인(茶人)들은 이곳의 옛 지명인 “문골”을 “이도(井戶)”라 불렀으며, 오늘날 일본은 찻잔으로 유명한 “정호차완”을 그들의 국보로 지정하여 세계적인 보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요지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우리 도공들을 납치하여 생산한 정호다완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