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 목판본.
연구의 한 자마다 『천자문(千字文)』과 같이 한글로 새김과 독음을 단 뒤에 그 구의 번역을 붙였는데, 김인후(金麟厚)의 편찬이라고 전하여진다.
그러나 편찬자와 원간의 연대 등이 명확하지 않다. 임진왜란 이전의 간본은 일본의 동경대학(東京大學)에 소장되어 있는 목판본이다. 간기가 없다. 방점은 없고,ᅀᅠ, ᄠᅳᆷ은 사용되었지만 정확하지 않다.
한자의 새김이 ‘不 안득불, 未 아ᄐᆞᆯ미, 上 마ᄃᆡ○’과 같이 광주판(光州版) 『천자문』과 공통된다.
그러므로 전라도 장성(長城)출신인 김인후의 편찬일 가능성이 크다. 1576년(선조 9)의 『고사촬요(攷事撮要)』의 책판 목록에 의하면, 평양과 장흥(전라도)에 『백련초해』의 책판이 등록되어 있으므로, 이 책이 16세기 중엽의 장흥판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후의 중간본은 국내에 몇 책이 전한다.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과 순천의 송광사에는 책판까지 남아 있다. 이들은 동경대학 소장본과는 달리 한자의 새김을 없앤 점이 특이하다.
한시 연구의 순서도 다른데, 이들 중간본 사이에도 연구의 순서와 번역이 일치되지 않는다. 동경대학 소장본은 1973년『국문학 연구』(효성여자대학교) 4호에 영인되고, 임진란 이후의 간년 미상인 한 책이 1960년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의 전신)에서 영인되어 국어사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