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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필지(한글본)
사민필지(한글본)
언어·문자
개념
어떤 언어에 의한 저작물을 상응하는 다른 언어로 대치하는 문학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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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어떤 언어에 의한 저작물을 상응하는 다른 언어로 대치하는 문학행위.
내용

이 때 전자의 언어를 소재언어(素材言語, source language), 그 저작물을 원전이라 하고, 후자의 언어를 목표언어(目標言語, target language), 그 저작물을 번역물(번역이라고도 한다)이라 한다.

언어가 음운·어휘·문법의 3요소로 성립되므로, 번역은 이론상 이 요소 하나하나에 따라서 행하여진 음운번역·어휘번역·문법번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음운번역은 동양에서 예로부터 음역(音譯)이라 하여 불교의 다라니(陀羅尼)를 한자로 전사하는 것을 가리켜 왔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글창제 이후 한글로 다라니를 전사한 1485년(성종 16)의 ≪오대진언 五大眞言≫ 등 각종 진언집(眞言集)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번역은 소재언어의 어휘·문법 요소를 합치고 부분적으로 음운 요소를 고려하여 행해지는 작업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 문제되는 번역은 국어가 목표언어인 경우이지만, 간혹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번역의 목적은 소재언어의 독자가 원전에서 받은 인상과 의미내용을 목표언어의 독자가 똑같이 받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두 언어 사이에는 문화적 배경에 따른 어휘의 의미에 차이가 있고, 문법의 구조가 다르며 운율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목표는 완벽하게 달성되지 못한다. 내용 뿐 아니라 운율 등 언어의 형식미까지 추구하는 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므로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고도 말한다.

컴퓨터에 의한 기계번역이 꾸준히 연구되고 있지만, 현단계에서는 자연과학의 보고서와 같이 간단한 언어구조로 된 저작물에 대하여 가능할 뿐이다.

번역은 외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요구된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번역은 중국어나 한문을 통한 중국문화와의 접촉에서 시작된다. 특히 한문을 받아들인 초기부터 그것을 읽고 이해하려 하였을 것이므로 번역이 행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록상으로는 8세기의 설총이 9경(九經)을 우리말로 읽었다는 것(삼국사기 권46)이 최초의 일이다. 이 기록의 해석에는 문제가 있으나, 직접이든 간접이든 한문의 번역과 관련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현존하는 최초의 번역서는 이두로 번역된 1395년(태조 4)의 ≪대명률직해 大明律直解≫이다. 그 밖에 이두에 의한 번역으로는 1415년(태종 15)의 ≪양잠경험촬요 養蠶經驗撮要≫, 1541년(중종 36)의 ≪우마양저염역치료방 牛馬羊猪染疫治療方≫ 등이 있다.

한글에 의한 번역은 ‘역해(譯解)·번역(15세기에는 ‘反譯’이라 쓰이기도 하나 독음은 ‘飜譯’과 같다.)·번서(翻書)·언역(諺譯)·석(釋)’이라고도 하였으나, 보통 ‘언해(諺解)’라 불리었다.

언해는 ≪석보상절 釋譜詳節≫(1447)이 가장 빠르지만, 다른 언해와는 달리 원전을 싣지 않았기 때문에 ≪훈민정음언해 訓民正音諺解≫·≪능엄경언해 楞嚴經諺解≫를 그 효시로 삼는다.

이 책들은 한 대문씩 한문의 원전을 보이고 번역을 대조하여 실었다. 번역문은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였는데, 후대의 언해서에서는 한글만 사용하는 일도 있었으나 원전과 번역의 대조는 그대로 따랐다.

이러한 언해는 개화기까지 유교·불교·의약 등 각종 문헌을 대상으로 행하여졌다. 고대소설·가사·시조 등 문학작품을 제외하면, 이 시기의 한글 문헌은 거의 언해서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한글에 의한 번역은 한문이 아닌 동양의 외국어, 즉 몽고어·만주어·일본어의 학습서에 대하여도 행하여졌다. 중국어 학습서의 번역은 간혹 ‘번역’이라고 하는 일도 있으나 주로 ‘언해’라 하였는데, 몽고어 등의 번역은 ‘번역·신석(新釋)·첩해(捷解)’라 하여 언해라 하지 않았다.

19세기에 서양의 문물과 예수교가 수입되면서 번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 전까지 번역의 대상은 한문서적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 때부터 서양어 서적으로 바뀌게 된다. ≪텬쥬셩교공과 天主聖敎工課≫(1862) 등 예수교의 서적과 ≪ᄉᆞ민필지 士民必知≫(1895) 등 계몽서를 비롯한 각종 번역서가 잇따라 간행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는 서양의 학술서와 예술작품 등 다방면에 걸친 번역이 행하여졌는데, 처음에는 중국어나 일본어의 번역을 다시 국어로 번역하는, 이른바 이중역(二重譯)이었으나 차차 서양어로부터 직접 번역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서양어의 번역은 언해서의 체재와는 달리 번역문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뜻에서의 번역은 서양문물이 들어온 뒤에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지면 언해라 할 수 없는 ≪석보상절≫은 한문으로 된 원전이 전하지 않으나 국어 번역의 가장 빠른 시도라 해야 할 것이다.

번역 양식은 전통적으로 직역(直譯) 또는 축자역(逐字譯)과 의역(意譯) 또는 자유역(自由譯)으로 나뉜다. 이러한 분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설정되기는 어렵지만, 직역이 원전의 형식에 충실한 데 대하여 의역은 그 내용에 충실한 것이라는 정도의 상대성을 통해 구별된다.

이러한 뜻의 직역과 의역은 한 원전에 대한 번역물이 둘 이상일 때 쉽게 대응시킬 수 있다. 예컨대, ≪소학 小學≫은 먼저 ≪번역소학 翻譯小學≫(1518, 중종 13)으로 번역, 출판된 지 약 60년 만에 ≪소학언해 小學諺解≫(1587, 선조 20)로 다시 번역되었는데, 전자가 의역이고 후자가 직역이다.

≪소학언해≫의 범례에 의하면, ≪번역소학≫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주석까지 본문에 넣어 번역한 결과로 글이 산만하여졌으므로, ≪소학언해≫는 전적으로 원전에 의거하여 축자역을 한다고 하였다.

또한 직해(直解)로 뜻이 통하지 않을 경우는 협주(夾註)를 한다고 하였는데, 이 협주는 현대의 각주(脚註)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각주는 서양의 직역 번역물에 나타나는 한 특징이다.

그 밖에 직역으로 된 ≪소학언해≫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① 번역문에 한자어가 많고 고유어가 줄어들며, ② 단어와 어구의 품사적 성격을 되도록 원전과 같게 하며, ③ 문맥을 분명하게 하여 주는 단어, 이른바 전이어(轉移語) ‘ᄡᅥ, 시러곰’ 등을 의역보다 많이 사용하며, ④ 경어법의 사용을 상당히 억제하는 일이 그것이다.

따라서 의역인 ≪번역소학≫에는 고유어가 많고 명사적 어구가 동사적 어구로 바뀌기도 하며, 전이어 등을 사용하지 않고, 또한 경어법을 민감하게 사용함으로써 그 번역을 구어에 상당히 근접시켜 놓았다. 이들 두 책이 보이는 특징이 곧 직역과 의역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번역양식을 역사적으로 보면 이두에 의한 번역은 내용상 의역이지만 언해서의 번역은 거의 직역이었다. 한 원전에 대한 언해서가 둘인 경우에는 앞선 번역이 의역이었고 뒤의 번역이 직역이었으며, 언해서가 하나뿐인 경우에는 대체로 직역이었다. 한편, 개화기 이후에 행하여진 번역은 언해서보다 의역이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국어학개설』(이희승, 민중서관, 1955)
『고친 한글갈』(최현배, 정음사, 1961)
「언해와 번역」(김영덕, 『국어국문학』 1·2, 1952)
「국어에 미친 중국어 인과관계 표현법의 영향」(남풍현, 『김형규박사송수기념논총』, 1971)
「번역과 대조분석」(문룡, 『피천득선생화갑기념논총』, 1971)
「중세국어 연구자료의 성격에 대한 연구」(안병희, 『어학연구』 9-1, 1973)
「언해의 사적고찰」(안병희, 『민족문학』 11,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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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안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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