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게는 그에 유래하는 일단의 문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범서(梵書)라고도 부른다.
인도의 전승에서는 범천(梵天, Brahman)에 관계시켜 말하고 있으나, 문자학자들은 서쪽의 문자들에 그 기원을 찾고 있는데, 여러 설들 가운데 북(北)셈 문자 기원설이 가장 유력하다.
브라흐미 문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이는 가로쓰기 방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이는 아랍어, 히브리어와 같은 셈계통 문자의 서법과는 대조적이다.
본질적으로는 음절 문자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모음과 자음을 조합하는 방식 덕분에 음소 문자처럼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즉 a, e, i, o, u 등을 나타내는 소위 모음자들 외에 자음자들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ka, na, ta…… 등과 같이 모음 a를 포함하는 음절을 나타내게 되어 있지만, 거기에 다른 모음자를 연결시킴으로써 ki, ko, ku 또는 ni, no, nu 등 다른 종류의 음절을 나타내는 방법을 가지고 있고, 또 특별한 부호를 붙여 자음자에서 모음 a를 제외시켜 순수한 자음 k, n, t…… 등을 적을 수 있는 기법을 가지고 있다.
범자의 여러 서체 가운데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것으로는 싯다마트리카(Siddhamāt○kā), 즉 이른바 실담자(悉曇字)와 데바나가리(Devanāgar○)문자가 있다.
실담자는 북방계의 굽타(Gupta)문자로부터 나온 서체이며, 같은 북방계의 나가리문자로 발달한 것이 데바나가리문자이다. 데바나가리는 가장 널리 보급된 서체로서 현대의 힌디어 표기에도 이 문자가 쓰이고 있다.
범자는 아시아의 동북으로 뻗어 티베트 문자(Tibet, 西藏文字)와 파스파(Paspa, 八思巴)문자를 차례로 낳았다. 티베트문자는 범자를 바탕으로 티베트어를 적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파스파문자는 원(元)나라 세조(世祖)가 승려 파스파(정확히는 ○P^ca_gs-pa)에게 명하여 티베트문자를 바탕으로 새로 만들게 한 이른바 몽고신자(蒙古新字)인데, 이들에는 음절문자적인 특징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범자를 포함한 이들 일련의 문자 체계는 고래로 우리나라에서 훈민정음 기원론의 대상으로 일부의 학자들이 지목하여 온 바 있다.
우리의 문자 생활사의 맥락에서 말한다면 진언집(眞言集) 등의 불교서적에 특히 다라니를 적는 데에 범자가 쓰인 것을 볼 수 있으며, 또한 불탑 등에 신앙의 상징으로서 석각되어 있는 예를 보는 등 불승들 사이에서의 범자 학습이 상당히 성했을 것을 알게 한다.
더 나아가 범자를 익힌 고승들은 범자를 우리말 표기에 이용하여 서찰 등에 썼다고도 전하나, 불행히도 그것을 증명할 실물이 보고된 것은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