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5년(성덕왕 24)에 창건되었으며, 고려 문종 때 지광국사(智光國師)가 이곳에 머물면서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유방선(柳方善)이 머물면서 강학(講學)하였는데, 이 때 수학한 한명회(韓明澮) · 강효문(康孝文) · 서거정(徐居正) · 권람(權擥) 등이 탑에 그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그 뒤의 역사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중창되지 못했다고 한다.
문화유산으로는 금당(金堂)터의 북쪽에 있는 지광국사현묘탑비(智光國師玄妙塔碑)를 비롯하여 불상광배(佛像光背) · 불두(佛頭) · 연화문대석(蓮華紋臺石) · 용두(龍頭) · 석탑재(石塔材)등이 있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지광국사현묘탑비는 높이 455㎝로서 비면 주위에는 아름다운 국화문양을 조각하였고 좌우 양쪽에는 각각 두 마리의 나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습을 양각으로 조각하였는데, 이는 11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이다.
원래는 이 탑비 옆에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있었는데, 경술국치 뒤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8·15 이후에 국내 여론으로 다시 반환되어 경복궁에 보존되고 있다.
또한, 절터 남쪽 약 800m 지점에는 완전한 형태의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있다. 높이 280㎝에 화강암으로 조성한 이 당간지주는 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당시를 법천사의 규모를 대변하는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