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탁지(琢之), 호는 술재(述齋). 동래부 소속의 화원이었다. 1763년(영조 39) 통신사행(通信使行)의 기선장(騎船將)으로 일본에 건너가 대마도지도와 일본지도 및 풍물을 모사하는 등 화원 김유성(金有聲)과 함께 활약하고 돌아왔다.
유작으로 1760년에 개모(改模)한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와 「부산진순절도」(육군박물관 소장), 1783년에 그린 「왜관도(倭館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비롯하여, 일본에 남기고 온 「묵죽도」와 「유하마도(柳下馬圖)」 등이 전한다.
『고화비고(古畵備考)』의 조선서화전에는 박동관(朴東觀)의 제찬(題讚)이 있는 그의 산수화가 유전된다고 기재되어 있다. 동래부사의 왜사(倭使) 접대광경을 그린 「동래부사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도 화풍으로 보아 그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