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 두 차례 중국 남쪽의 오월(吳越)에 가서 대장경(大藏經)을 가져왔으며, 해룡왕사(海龍王寺)를 창건하였다. 고려 의종 때 팽조적(彭祖逖)이 지은 보요에 관한 시(詩)의 발문에 의하면, 보요가 처음 오월에서 대장경을 구하여 돌아오다가 해풍(海風)이 갑자기 일어나서 표류하게 되었다.
신룡(神龍)이 대장경을 이곳에 멈추게 하려는 것으로 여기고 정성껏 축원하면서 용의 공덕까지를 빌었더니 바람이 자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귀국하여 대장경을 안치할 곳을 찾아 두루 다니다가 산 위에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제자 홍경(弘慶)과 함께 해룡왕사를 창건하였다.
이 절에는 용왕당(龍王堂)이 있어 영험이 많았는데, 용왕이 대장경을 따라와서 머무른 것이라고 한다. 또한, 보요의 진영에 대해서는 1094년(선종 11) 어떤 이가 찬을 남겼고 팽조적이 찬시를 남겼는데,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