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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물
조선후기 『풍악당집』을 저술한 승려.
이칭
풍악(楓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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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풍악당집』을 저술한 승려.
내용

성은 편씨(片氏), 본관은 금천(衿川). 호는 풍악(楓嶽). 경기도 고양(高陽)의 시촌(枾村) 출신. 18세에 삼각산(三角山)에 들어가 북한산성 안의 중흥사(重興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처음에는 환성 지안(喚醒志安)의 밑에서 불경을 공부하다가 뒤에 남쪽으로 내려가 여러 고승에게 지도를 받았으며, 호암 체정(虎巖體淨)의 의발(衣鉢)을 전해받았다.

그 뒤 주로 관동지역을 다니면서 교법(敎法)을 펴다가 하루는 문득 대오(大悟)하고, “종일토록 다른 사람의 보배를 헤아린다 해도 자신에게는 반푼어치의 이득도 없다.”고 하면서 홀연히 금강산의 내원통암(內圓通庵)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문을 닫고 강설(講說)을 일체 하지 않았으며 오직 염불(念佛)과 참선(參禪)에만 몰두하였다. 금강산구룡동(九龍洞) 초당(草堂)에서 나이 69세, 법랍 51세로 입적하였다. 이복원(李福源)이 지은 비는 강원도금강산유점사(楡岾寺)에 세워졌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풍악당집(楓嶽堂集)』 1책이 전한다.

참고문헌

『조선선교사(朝鮮禪敎史)』(忽滑谷快天, 정호경 역, 보련각,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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