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승(聖僧). 신라 정신대왕(淨神大王)의 태자로서 아우 효명(孝明)과 함께 오대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았다. 두 왕자가 산 속으로 들어가자 홀연히 땅 속에서 청련(靑蓮)이 피므로 보천이 그곳에 보천암(寶川庵)을 짓고 살았고, 동북쪽 600여보 지점의 청련이 핀 곳에 효명이 암자를 짓고 머물면서 부지런히 도를 닦았다.
하루는 형제가 다섯 봉우리를 첨례(瞻禮)하려고 올라갔는데, 동대에는 1만의 관음진신이 나타나 있고, 남대에는 팔대보살을 수위로 하여 1만의 지장이, 서대에는 무량수불과 1만의 대세지보살이, 북대에는 석가여래와 500나한이, 중대에는 비로자나불과 1만의 문수가 나타나 있었다.
이에 5만 진신을 모두 첨례하였는데, 그 뒤 매일 새벽이면 문수보살이 진여원(眞如院 : 지금의 上院寺) 자리에 이르러 36종의 형상으로 나타나 보였다. 두 왕자는 매일 동중(洞中)의 물을 길어다가 차를 달여 공양하고, 저녁이면 각기 암자에서 도를 닦았다.
그 때 신라의 왕위가 비어 태자를 데려가려 하였으나 그는 울며 사양하였으므로, 효명을 데리고 돌아갔다. 효명은 왕이 된 뒤 문수보살이 현현했던 곳에 진여원을 지었다. 그 뒤 보천은 공중을 나는 신통력을 얻어 울진국장천굴(蔚珍國掌天窟)에 이르러 그곳에 살면서 매일 『수구다라니경(隨求陀羅尼經)』을 독송하였는데, 그곳의 굴신(窟神)이 송하는 소리를 듣고 환희심을 내어 보살계를 청하였다.
그 뒤 다시 오대산 신성굴(神聖窟)로 들어가서 50년 동안을 수행하였는데, 도리천(忉利天)의 천신이 하루 세 번 법문을 들으러 왔고, 정거천(淨居天)의 무리들은 차를 달여 바쳤으며, 40성(聖)이 늘 상공에서 그를 호위하였다고 한다.
또 어떤 때에는 문수보살이 보천의 이마에 물을 쏟고 성도기별(成道記莂)을 주기도 하였다. 보천은 임종시에 후일 산중에서 행하여 국가를 도울 수 있는 행사를 기록해두었는데, 이것은 밀교(密敎) 및 불국토사상(佛國土思想)·오대산신앙(五臺山信仰)을 연구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