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권 2책. 목활자본. 1859년(철종 10)에 후손 천범(天範)이 처음으로 편집, 간행했고, 1897년에 후손 기하(基夏)가 중간하였다. 서문은 없고 천범과 기하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상책에는 연보와 「갑자사략(甲子史略)」, 부록으로 「임진사략(壬辰史略)」·「병자사략(丙子史略)」, 하책에는 시 203수가 수록되어 있다.
사략은 자신의 주관적인 평가를 배제하고 역사적 사실을 연대기의 형식으로 서술한 것이다. 문장이 짧고 명료하다.
「갑자사략」은 자신이 직접 겪은 사실을 기술한 것이다. 인조 때 평양부사 이괄(李适)과 구성부사 한명련(韓明璉)이 결탁해 반란을 일으킨 뒤 도성을 점령하자 도원수 장만(張晩)과 부원수 정충신(鄭忠信)이 그들을 격파한 사실과 1627년(인조 5) 청나라가 강홍립(姜弘立)을 앞세워 의주를 함몰하고 의주부윤 이완(李莞)을 살해한 일, 인조의 몽진과 강화의 성립 등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병자사략」에서는 청병이 침입해 도성이 함락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몽진하고 왕족과 대신들은 강화도로 피란했고, 청나라 병사가 강화도를 함락해 결국 송파 삼전도(三田渡)에서 강화가 성립된 경위를 상술하고 있다.
「임진사략」에는 1555년(명종 10) 왜구의 침입, 1589년(선조 22) 도요토미(豊臣秀吉)의 화의요청에 대한 황윤길(黃允吉)과 김성일(金誠一) 등 통신사의 파견, 왜병의 침입과 선조의 의주피란, 명나라에 대한 원병 요청 및 이여송(李如松)의 파견, 그 뒤 왜병과의 전투, 왜병에 대한 승리 등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만, 이순신에 대한 언급은 없다.
시는 주로 전란의 참상과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 대한 우려, 시국에 대한 비분 등을 격정적으로 호소한 것이다. 전란 중에 참화를 당했거나, 목숨을 버려 정절을 지켰거나, 왜병에 대항하여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애도하는 만시(挽詩)도 많이 들어 있다. 시에는 당시 사대부들의 윤리 의식과 사대부의 눈에 비친 전란의 상황이 비교적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