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 맞배지붕건물. 1980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봉국사는 조선 현종(1660∼1674 재위) 때 창건된 왕실 원당(願堂)으로서, 산 정상 아래 턱에 아담한 규모의 사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급속도로 사세(寺勢)가 기운 듯 원래의 모습을 거의 잃은 채 주불전인 대광명전과 승방만 보존되어오다가, 1970년대부터 중창 불사가 이루어져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되었다.
대광명전은 낮은 언덕에 잡석으로 축대를 세우고 그 위에 남향하여 세운 건물이다. 기단 전면에는 가운데와 향우측 두 군데 7∼8급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기단 전면과 윗면, 계단 등은 모두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어서 옛맛을 잃고 있다.
주초석도 춤이 높은 고복형 주초인데, 주초 옆면에 새겨진 연꽃으로 보아 1974년에 이 건물을 해체 · 보수할 때 새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기둥 가운데 전면의 네 기둥만은 모두 이어 붙인 흔적을 보인다.
창호는 전면 3칸에 칸마다 4짝 井자살문, 향우측면 앞 툇간에 외짝 井자살문을 밖으로 열도록 달았는데, 제작기법으로 보아 근래에 바꾸어 단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칸은 모두 벽체로 처리하되 중방을 가로질러 벽면을 양분한 다음, 상부 벽은 벽화로, 하부 벽은 황토분장으로 마감하였다.
12칸 가운데 4칸에만 창호를 두어 비교적 어둡고 폐쇄적인 구성을 보이는 이 불전은, 내진고주(內陣高柱)를 세우지 않고 불단을 뒷벽 중앙에 붙여 배치한 결과 예불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경향을 보인다.
불단이나 천개(天蓋) 등 장엄구는 재료가 좋고 제작 솜씨가 뛰어나 건물 창건 시기인 현종 때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불단은 윗면에 복련을 얕게 새긴 상다리형 하대, 굵은 어의동자기둥(기둥 옆에 붙여대는 넓은 동자주)을 세워 분절한 2단의 중대, 밑에 앙련을 얕게 새긴 상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단 위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삼존불좌상(阿彌陀三尊佛坐像)의 본존불상은 목조팔각 연화대좌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상은 연화대좌에 각각 봉안되어 있는데, 대광명전이라는 전호(殿號)와는 맞지 않는 상황이다.
천개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아자형[重亞字形]평면에 공포를 짜 올린 6개의 감실 천장을 두었는데, 이 가운데 용그림을 그린 가운데 천장과 학그림을 그린 좌우 천장은 모두 팔각형으로 공포를 구성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공포는 출목을 하나 내민 2익공식(二翼工式)으로 출목첨차나 익공의 치목 기법으로 보아 이 건물의 건립 연대를 19세기 말 이후로 보아야 할 것이며, 현종 당시의 모습이 아님은 분명하다.
익공은 건물 내부에서는 대들보나 충량을 받치면서 보아지 형태로 바뀌어 있다. 창방(昌枋) 위에는 화반(花盤)이 전후면은 어간에 2개, 좌우툇간에 1개, 측면은 어간에 1개가 배치되어 있다.
이 건물의 구조상 특이성은 맞배집인데도 불구하고 내부에 충량을 좌우 2개씩 배치하여 천장가구를 받치게 한 데 있다. 천장은 중심부는 우물반자, 주변부는 빗반자로 마감되어 있다. 지붕 용마루 양 끝에는 용두(龍頭)가 배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