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진은 제주도 북군 구좌면 연평리에서 태어나 17세 때 숙부인 김봉남(金奉南)을 따라 부산으로 간 뒤 뱃사공 조수를 하면서 김봉남이 지도하는 수련공부에 힘써 월하(月河)라는 도호(道號)까지 받았다.
그는 김봉남이 가르치는 물법수도를 하면서도 불교에 뜻을 두어 승려 박보륜(朴寶輪)의 도움을 받아 범어사에서 백일수련을 마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김봉남의 물법도 불교적인 면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해방 후 고향에 돌아가 반공청년단장을 지내는 등 정치에도 가담해 보고 1년 동안 경찰직에 종사하기도 하였으나, 마음에 맞지 않아 1949년경 숙부 곁으로 돌아와 수련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1950년 김봉남이 김해에서 죽자 김해군 대동면 수안리에 집을 마련하여 그의 영위(靈位)를 보관하였고, 1953년에는 부산 아미동에 용화사(龍華寺)라는 절을 설치, 불교적인 색채를 가하여 포교를 시작하였다.
그 뒤 이 본부를 김해로 옮기려 하였으나 강기춘(康基春) 등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단독으로 교인을 모아 김해의 자택에 봉남사라는 간판을 걸게 되었다. 한 때는 수백 명의 신도들이 모여들었으나 그가 안보살(安菩薩)이라는 여인에게 관리를 맡기고 제주도로 건너가 조계종 승려가 된 뒤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기본교리는 봉남교와 같으나 김봉남의 영상과 나란히 아미타불을 봉안하여 숭배하였으며 봉남을 기념하는 5대 치성이 주요 제의였다. 봉남의 기본신념이 아미타불의 공덕을 염송하면서 자성불(自性佛)을 찾는 데 있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