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영언』을 비롯한 여러 가집(歌集)에 실려 전한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반대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는데, 죽음에 임박하여서도 꺾이지 않는 자신의 꿋꿋한 절개를 노래한 것이다.
‘봉래산가’라는 제목은 작품 가운데 등장하는 봉래산을 따서 후세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이 몸이 죽어가셔 무어시 될고 ᄒᆞ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되야이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ᄒᆞᆯ졔 독야청청(獨也靑靑)ᄒᆞ리라.” 살아서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홀로 푸른 소나무가 되겠다고 하여 생사를 초월한 늠름한 절개를 나타내었다.
절개를 지키려는 자에게 으레 따르게 마련인 시련을 천지에 가득한 흰 눈으로 비유하는 한편, 그 가운데 푸르게 우뚝 솟은 낙락장송에 자신의 절개를 비유함으로써 시각적인 대비를 통하여 지조의 굳고 빼어남을 드러내었다.
이 「봉래산가」는 고려말의 충신이었던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를 잇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뒤에 권필(權韠)의 시조에도 이와 아주 유사한 작품이 보이고, 작품 속의 낙락장송은 후대의 작품에서는 으레 동량재(棟梁材)와 고절한 기품을 상징하는 은유로 많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