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상(官階上)으로는 현신교위(顯信校尉)·창신교위(彰信校尉)라 별칭되었다. 태종 초에는 섭사직(攝司直)이라 하였으나 오위체제가 갖추어지면서 1467년(세조 13)에 종5품 부사직으로 개칭되어 법제화되었다.
『경국대전』 당시의 정원은 123인이었으나 후기에 오위의 기능이 유명무실하게 되자 그 수가 102인으로 줄었다. 후기의 오위는 무보직자, 다른 군영(軍營) 및 여러 잡직 등에게 녹봉을 주기 위한 기관으로 바뀌어, 부사직도 이와같은 다른 직종이 오위의 무직을 띠어 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전회통』에서 부사직에 배정된 직종을 들어보면, 무보직자의 녹봉을 보장하는 원록체아(原祿遞兒) 17인, 승습군(承襲君) 3인, 공신적장(功臣嫡長) 13인, 미설가수령(未挈家守令) 3인, 훈련도감장관(訓鍊都監將官) 6인, 군병(軍兵) 4인, 금위영장관(禁衛營將官) 5인, 내의원의원(內醫院醫員) 6인, 사자관(寫字官) 1인, 사역원역관(司譯院譯官) 7인, 관상감술자(觀象監述者) 1인, 포토군관(捕討軍官) 12인, 금군(禁軍) 30인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