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

부산 시가지
부산 시가지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대한민국의 동남단에 위치한 광역시.
이칭
이칭
부산, 부산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한민국의 동남단에 위치한 광역시.
개관

동쪽은 동해, 서쪽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와 김해시, 남쪽은 다대만 · 부산만 · 수영만을 끼고 남해, 북쪽은 울산광역시 온양면 · 서생면, 경상남도 양산시, 김해시와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8°45'∼129°18', 북위 34°52'~35°23'이다. 면적은 765.82㎢이고, 인구는 355만 771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5개 구, 1개 군, 2개 읍, 3개 면, 205개 행정동(187개 법정동), 166개 행정리(62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에 있다.

자연환경

낙동강을 기준으로 동부 구릉성 산지지대와 서부 평야지대로 구분된다. 동부 구릉성 산지지대는 낙동강의 동쪽지대로 한반도의 척량산맥인 태백산맥이 동해안과 평행하게 달려 남해에 몰입하고 있다. 이 지대의 산지는 크게 금정산맥과 금련산맥으로 구분되며, 대체로 북동∼남서 방향으로 나타난다. 금정산맥은 이른바 부산의 척량산맥으로 부산을 동서로 가르는 지형적 장애물의 역할을 하며, 양산단층에 의해 지배된 산지이다. 해안에는 적기 · 암남 · 장군 · 다대 등의 반도가 돌출해 그 사이로 수영만 · 부산만 · 감천만 · 다대만 등이 발달하였다. 해안선 가까이 산지가 임박해 대부분 수심이 깊고 해식작용이 활발하다. 따라서 태종대 · 몰운대 등의 암석 해안에는 해식애 · 해식대 등이 잘 발달했고, 만입부에는 두각지에서 침식된 물질로 자갈해안 · 사빈해안 등이 발달했다.

양산시의 원효산(元曉山, 922m)에서 시작해 금정산(金井山, 802m) · 백양산(白楊山, 642m) · 엄광산(嚴光山, 504m) · 구덕산(九德山, 565m) · 시약산(蒔藥山, 590m) · 승학산(乘鶴山, 496m) 등으로 이어지다가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대한해협으로 몰입한다. 금련산맥은 해안에 치우쳐 해안선과 거의 평행하게 달리는 해안산맥의 성격을 지니며, 울산단층에 의해 지배된 산지이다. 기장군 일광면의 달음산(586m)에서 시작해 장산(萇山, 634m) · 금련산(金蓮山, 419m) · 황령산(荒嶺山, 428m)을 지나 영도의 봉래산(蓬萊山, 394m)으로 이어진다. 금정산맥에 비해 고도가 한 단계 낮고 경사가 완만하다. 이들 산맥은 하천의 개석작용에 의해 연속성이 뚜렷하지 않다. 대부분 고도 400∼800m의 독립된 구릉성 산지로 존재하며, 산지 사이에 소침식분지가 발달하였다. 서쪽으로는 양산시 원동면의 토곡산(土谷山, 855m)에서 시작해 김해시의 신어산(神魚山, 630m) · 용지봉(龍池峰, 750m) · 불모산(佛母山, 802m) · 굴암산(屈巖山, 662m) · 보개산(寶蓋山, 479m)을 지나 가덕도의 연태봉(烟台峰, 495m)으로 이어지는 신어산맥이 서부 외곽지역을 둘러싸고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낙동강을 비롯해 양산시 원효산에서 발원하는 수영강(水營江), 금정산에서 발원해 수영강과 합류하는 온천천(溫泉川), 장산에서 발원하는 해운대천(海雲臺川) 등이 수영만으로 흘러든다. 또한 백양산에서 발원하는 동천(東川), 엄광산에서 발원하는 보수천(寶水川), 구봉산에서 발원하는 부산천(釜山川) 등이 부산만으로 흘러든다. 낙동강의 지류인 학장천(鶴障川) · 구포천(龜浦川) · 화명천(華明川) 등이 있다. 서부 평야지대는 대부분 고도 5m 이하의 저평한 충적평야로 이뤄져 있으며, 이는 낙동강 하구에 발달한 우리나라 제1의 삼각주로서 김해평야로 이른다. 양산천(梁山川)이 낙동강 본류에 합류하는 물금 부근에서 낙동강 하구로 넓게 펼쳐진 삼각주 말단에는 간석지와 연안사주가 성장하고 있다. 특히 을숙도 · 신호도 · 장자도를 중심으로 남쪽에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고 있다.

전형적인 해양성기후로 연평균기온 14.0℃, 1월 평균기온 2.2℃, 8월 평균기온 25.4℃이며, 연교차는 23.3℃이다. 연강수량은 1466.2㎜로 다우지역에 속하며, 연강수량의 45∼50%인 500∼700㎜가 여름철(6∼8월)에 집중된다. 바람은 겨울에 북서풍, 여름에 남서풍이 탁월하며, 연평균풍속이 4.4m/sec로 연중 강한 바람이 많이 분다. 해안에서는 해륙풍이 많이 나타나며, 특히 9월에 탁월하다.

역사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영도구 동삼동 · 영선동 · 조도, 서구 암남동 · 다대동, 북구 금곡동 등의 해안과 강변에 위치한 조개더미들이 있다. 여기에는 석기 · 빗살무늬토기 등의 생활용구와 먹고 버린 조개 · 동물뼈들이 포함되어 있어 이 지방의 선주민이 주로 어로생활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앞의 선주민과는 달리 내륙의 평지나 구릉지대에서 발견된다. 그 분포는 부산시내 전지역에 퍼져 있고 특히 동래지구에 집중되어 있다. 이미 원시적인 농경생활을 알게 된 그들의 사회와 문화는 급속히 발달해 삼한시대에는 유력한 부족국가를 형성했던 것 같다.

변진 독로국(弁辰瀆盧國)은 동래지방에 있었던 나라로 보는 의견이 상당히 유력하다. 이 나라는 김해지방의 가야연맹체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부강한 나라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동래 복천동고분군과 연산동고분군의 규모와 부장품의 내용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 지방은 지리적 여건으로 신라의 세력에 일찍부터 흡수되었던 것 같다. 『삼국사기』「열전」에 탈해이사금대(57∼79)에 거도(居道)가 계략으로 우시산국(지금의 울산)과 거칠산국(居漆山國: 지금의 동래)을 쳐서 빼앗았다는 기록의 연대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하더라도 이 지역이 일찍이 신라의 수중에 들어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래는 옛 장산국(萇山國) 또는 내산국(萊山國)인데 신라가 이를 빼앗아 거칠산군(居漆山郡)을 두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동래군으로 개칭하고 동평현(東平縣)과 기장현(機張縣)을 영현으로 했다고 한다. 본래 동평현은 대증현(大甑縣)이고 기장현은 갑화량곡현(甲火良谷縣)인데 경덕왕 때 개칭한 것이며, 기장현은 뒤에 양주(良州: 지금의 양산)로 이속되었다. 835년(흥덕왕 10)에 범어사가 창건되었다.

1018년(현종 9) 동래현이 울주의 영현이 되었다가 뒤에 현령을 두어 분립하였다. 동래현의 영현인 동평현은 양주(梁州)의 영현으로 이속되었다. 고려 전기에는 동래를 본관으로 하는 동래정씨 일족이 중앙정계에 진출함으로써 호족세력을 형성하였다. 동래의 온천도 유명하여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방문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호하는 왜구의 침략을 방비하기 위해 경상도도순문사 박위에 의해 동래읍성이 축조되었다.

1397년(태조 6) 동래에 진을 설치해 병마사가 판현사(判縣事)를 겸했다. 고려 말부터 창궐하던 왜구가 1396년 동래현 · 동평현 · 기장현을 침범하였다. 1423년(세종 5) 부산포를 개항해 왜관을 설치하였다. 1428년 동평현이 동래현 소속으로 복귀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종 때 동래현의 호구수는 290호 2,416인이며, 동평현은 108호 627인이었다.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으로 왜관을 폐쇄했다가 1512년 다시 개관하였다. 1547년(명종 2) 동래현이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592년(선조 25) 울산 개운포(開雲浦)에 있던 경상좌수사영(慶尙左水使營)을 수영(水營: 지금의 남구 수영동)으로 옮겼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산첨사 정발(鄭撥)은 부산진성을,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과 양산군수 조영규(趙英圭)는 동래성을, 다대포첨사 윤흥신(尹興信)은 다대포성을 사수하다가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이 싸움에서 많은 군 · 민이 성과 운명을 같이했으며, 또 이 지방 주민들은 스스로 의병으로 단합해 적을 무찌르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워 난이 끝난 뒤 선무원종공신의 칭호와 은전을 받은 사람만도 66인이나 되었다.

1605년 동래부사 윤훤(尹暄)이 송상현을 모시기 위해 송공사(宋公祠)를 세웠다가 1624년(인조 2) 충렬사(忠烈祠)로 사액되면서 임진왜란 때 이 지방에서 순국한 모든 충신 · 열사를 합사하게 되었다. 당시의 공방전을 사실적으로 그린 「동래부순절도」와 「부산진순절도」가 동래 안락서원(安樂書院)에 전해왔다.

임진왜란 때 동래성이 함락된 뒤 현으로 강등했다가 1599년 다시 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607년 두모포(豆毛浦)에 왜관이 다시 설치되었다. 1655년(효종 6) 동래부에 독진(獨鎭)이 설치되었다. 1690년(숙종 16) 부사가 방어사를 겸했다가 2년 뒤에 방어사가 폐지되었다. 1678년 왜관을 초량(草梁: 지금의 용두산 일대)으로 옮겼다.

1763년(영조 39) 통신사로 일본에 간 조엄(趙曮)이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와 동래부사 강필리(姜必履)가 그 재배에 성공함으로써 전국에 퍼졌다. 『동래부읍지』에 의하면 1759년의 동래부 호구수는 6657호 2만 5753인이었다.

1876년(고종 13) 병자수호조약 체결에 따라 부산포가 개항장이 되었다. 1877년 부산에 조계(租界)가 설치되었으며, 일본 · 청국 · 영국의 영사관이 설치되었다. 1883년 개항에 따른 항만관리 · 외교사무를 담당하기 위한 감리(監理)를 두어 동래부사가 이를 겸임했으며, 부산해관(釜山海關, 부산세관)을 설치하였다.

1890년 동래감리서(東萊監理署)를 설치하였다. 1895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동래부는 경상남도에 소속되었다. 1903년 군으로 강등했다가 1906년 다시 부로 승격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에 동래군이 되었다. 1906년 일본영사관이 폐지되고 이사청(理事廳)이 개설되었다.

1908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옛 부산역 일대의 매축 공사가 준공되었다. 1909년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 사이에 연락선이 취항하였다. 1914년에 동래부가 부산부로 개편되었다. 1915년에 부산진과 동래 온천장 사이에 전차가 개통되었으며, 이듬 해 시내 전차도 개통되었다.

1919년 3월 11일 동래고등보통학교 · 부산상업학교 · 부산진여학교의 학생들이 사전계획에 따라 만세시위를 일으키자 많은 시민들이 호응해 격렬한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3·1운동 후 안희제(安熙濟)는 동지를 규합해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설립해, 국내외의 연락을 담당하고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였다. 한편 그는 신문사를 경영해 언론으로써 투쟁하는 등 일생을 광복운동에 헌신하였다.

1920년 의열단원 박재혁(朴載爀)은 부산경찰서를 폭파하고 옥중에서 단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한흥교(韓興敎) · 윤현진(尹顯振) 등 해외로 나가 광복운동에 일생을 바친 사람도 적지 않다.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겼으며, 1934년 영도대교가 준공되었다. 1936년 동래군 서면과 사하면 암남리를 편입하고, 1942년 동래읍 · 남면 · 사하면을 편입해 시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5일까지 임시수도로 반격의 기지가 되었으며, 피난민이 몰려들어 인구가 급증하였다. 유엔군의 전사자가 늘자 1951년 유엔묘지가 대연동에 조성되었다. 1955년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 1957년에 구제가 실시되면서 6개 구청을 신설하였다. 1960년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연일 일어나 인근 각 지방으로 퍼져나갔다.

1963년 정부직할시로 승격하면서 동래군 구포읍 · 사상면 · 북면 및 기장면 송정리를 편입하였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1973년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1976년 김해국제공항을 개설하였다. 1978년 김해군 대저읍 · 명지면과 가락면 일부를 편입하였다.

1983년 경상남도 도청이 창원시로 옮겨갔다. 같은 해 낙동강 하구언공사가 시작되었다. 1987년 지하철 제2단계 구간이 개통되었다. 1989년 김해군의 가락면과 녹산면이, 의창군 천가면이 각각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변경되고, 3월 1일 연제구 · 수영구 · 사상구와 기장군이 설치되었다.

유물 · 유적

불교 유산으로는 금정구 청룡동의 범어사에 범어사 대웅전 · 범어사삼층석탑 · 범어사 일주문 · 원효암동삼층석탑 · 원효암서삼층석탑 · 범어사당간지주 · 범어사석등 등의 문화재가 있다. 범어사 대웅전은 1966년, 범어사삼층석탑은 1963년, 범어사 일주문은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다. 원효암동삼층석탑, 원효암서삼층석탑, 범어사당간지주, 범어사석등은 1972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북구 만덕동의 만덕사지(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에는 만덕사지 당간지주(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가 남아 있다. 그밖에 부산대학교의 오층석탑(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동아대학교의 삼층석탑(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강서구의 범방동 삼층석탑(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 등이 있다.

부산만의 해안선과 낙동강 하구 및 내륙의 부산진 · 동래지역은 우리나라에서도 선사시대 유적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곳이다. 해안과 강변의 동삼동 · 다대포 · 금곡동 등에는 신석기시대 패총이 있으며, 내륙의 동래 · 전포동에는 철기시대의 패총이 있다. 그리고 동래지역과 사하지역의 여러 곳에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각종 유적 · 유물들이 발견 · 조사되었다.

이러한 유적들 중에서도 영도구의 동삼동패총(사적, 1979년 지정)은 신석기시대의 여러 문화층이 겹쳐져서 우리나라 선사문화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동래구 낙민동의 동래패총(사적, 1970년 지정)은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으로 여기에서는 제철노지(製鐵爐址)가 발견되었다.

삼국시대의 고분군은 동래 복천동고분군(사적, 1981년 지정), 연제구의 연산동 고분군(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금정구의 노포동 고분군(부산광역시 기념물, 1996년 지정), 강서구의 생곡동 가달고분군(부산광역시 기념물, 1996년 지정) 등이 있다.

복천동고분군은 최근에 발굴 조사되어 그 독특한 묘제와 풍부한 부장품이 발견되었으며, 연산동고분군은 일찍이 도굴되고 파괴되어 그 부장품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구포동 · 화명동 · 덕천동에서도 소규모의 군집묘(群集墓)가 발굴 조사되었고, 동래구 거제동에는 동래정씨의 시조묘가 고려시대부터 전해지고 있다.

성곽으로는 연제구 연산동의 배산(盃山)에 있는 배산성지(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금정구 금성동의 금정산성(사적, 1971년 지정)이 있다. 금정산성은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으로 금정산성부설비(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가 있다. 북구 덕천동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구포왜성(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과 동구 범일동에는 부산진성(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과 부산진성 서문성곽우주석(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이 있다.

동래구 일부 지역에 걸쳐 있는 동래읍성지(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는 지형을 이용한 산성식 읍성으로 고려 말 박위(朴葳)가 왜구 침략에 대비해 축성한 것이다. 또한 온천동의 내주축성비(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와 남구 대연동의 부산시립박물관 소장 동래남문비(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가 있고, 수안동의 성내에는 동래부 동헌 충신당(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이 있다.

성지로는 수영구 수영동과 망미동 일대에는 경상좌수영성지(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와 경상수영성 남문(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사하구 다대동에는 수군첨사영의 성지와 다대진 동헌(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가 있다.

부산은 일찍부터 나라의 관문 구실을 하여 왜관과 왜란의 유적도 적지 않다. 용두산의 초량왜관 경계에 세웠던 약조제찰비(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 척화비(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는 부산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동구 좌천동의 정공단(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동래구 복천동의 송공단(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사하구 다대동의 윤공단(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은 임진왜란 때 순국한 부산첨사 정발, 동래부사 송상현, 다대포첨사 윤흥신과 전몰장병을 위한 제단이다.

수영구 수영동에는 25의용단(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이 있다. 동래구 복천동에는 동래성에서 전사한 군 · 민의 유해를 거두어 설립한 임진동래의총(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동래구 명륜동의 동래향교(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안락동의 충렬사(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1986년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해운대구 반송동의 반송삼절사가 있다.

수안동의 장관청(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안락동의 군관청(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 · 동래남문비(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 온정개건비(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 이섭교비(부산광역시 기념물, 1980년 지정) · 동래읍성지(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사하구 다대동의 정운공 순의비(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강서구 성북동의 가덕도척화비(부산광역시 기념물, 1993년 지정), 동래구 온천동의 망미루(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가 있다.

영도구 동삼동의 태종대(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남구 용호동의 오륙도(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용당동의 신선대(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중구의 용두산공, 사하구 다대동의 몰운대(부산광역시 기념물, 1972년 지정), 부산진구 초읍동의 어린이대공원 등이 있다. 동아대학교박물관에는 개국원종공신녹권(국보, 1962년 지정) · 안중근의사 유묵-견리사의견위수명(보물, 1972년 지정) · 초충도수병(보물, 1975년 지정) · 궁궐도(보물, 1975년 지정) · 동궐도(국보, 1995년 지정) · 융기문토기(보물, 1975년 지정) ·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보물, 1975년 지정) · 쌍자총통(보물, 1975년 지정) · 의령보리사지금동여래입상(보물, 1982년 지정) · 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 병풍(보물, 1982년 지정) · 헌종가례도 병충(보물, 1982년 지정) · 지자총통(보물, 1982-2 지정) 등의 많은 문화유산이 소장되어 있다.

부산시립박물관에는 금동보살입상(국보, 1979년 지정) ·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국보, 1986년 지정)가 있다. 해운대구 중일동에는 조숭 고신왕지(보물, 1988년 지정) · 조서경 무과홍패(보물, 1988년 지정)가 있다. 그밖에도 부산진구 부전동의 동모(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 동파두(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등의 유물이 있다.

천연기념물은 부산진구 양정동의 부산진배롱나무(천연기념물, 1965년 지정), 청룡동의 범어사 등나무 군락(천연기념물, 1966년 지정),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천연기념물, 1966년 지정), 부산전포동의 구상반려암(천연기념물, 1980년 지정), 부산 수영동의 곰솔(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 부산 수영동의 푸조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부산 구포동 당숲(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강서구의 가덕도 동백군락(부산광역시 기념물, 1993년 지정)이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동래야류 · 수영야류 · 대금산조 · 단청장 · 좌수영어방놀이 · 자수장 · 풍어제 · 수영농청놀이 · 동래학춤 · 동래지신밟기 · 충렬사제향 · 부산농악 · 다대포후리소리 · 가야금산조 · 부산영산재 · 동래고무 등이 있다. 동래야류는 1967년, 수영야류는 1971년, 대금산조는 1971년, 단청장은 1971년, 좌수영어방놀이는 1978년, 자수장은 1984년, 풍어제는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수영농청놀이는 1972년, 동래학춤은 1972년, 동래지식밟기는 1977년, 충렬사제향은 1979년, 부산농악은 1980년, 다대포후리소리는 1987년, 가야금산조는 1989년, 부산영산재는 1993년, 동래고무는 1993년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동래향교와 안락서원이 있었다. 동래향교는 1392년(태조 1)에 건립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35년(인조 13) 부사 이홍망(李洪望)이 중건하였다. 그뒤 여러 번 중수를 거듭하다가 1813년(순조 13)에 지금의 명륜동으로 이건해 동래 유림을 강학하는 장소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안락서원은 1605년(선조 38)에 부사 윤훤이 임진왜란 때 순절한 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관민 제위를 향사하기 위해 남문에 건립한 충렬사가 그 시초이다. 1652년(효종 3) 부사 윤문거(尹文擧)가 송상현의 학행과 충절이 후학의 사표가 된다 하여 안락리(지금의 안락동)에 사당을 창건해 안락서원이라 하였다.

이밖에 1732년에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읍성을 쌓은 기념으로 읍인(邑人)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세운 시술재(時述齋)라는 서당이 있었으며, 당감리의 봉래재(蓬萊齋), 송정리의 송호재(松湖齋), 부곡리의 영모재(永慕齋), 화지산(華池山) 아래의 경엄재(敬嚴齋), 지곡산(池谷山) 아래의 율수재(律修齋) 등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김우정(金禹鼎)의 강학소인 향교재(鄕校齋)와 박지우(朴志瑀)의 강학소인 양성재(養成齋)를 비롯해 당리의 학산재(鶴山齋) 등이 소학교 · 보통학교 등과 함께 운영되었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895년 박기종(朴琪淙)이 설립한 사립 개성학교(開城學校)가 그 시초이다. 그해 10월에 좌천동에 사립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가 개교하였다.

1900년에는 동래 기영회(基英會)에 의해 동래부소학교가 개교했으며, 개양학교(開陽學校) · 삼락학교(三樂學校) · 동명학교(東明學校) · 양정숙(養貞塾) · 초량학교(草梁學校) · 옥성학교(玉成學校) · 부산공립보통학교 등이 잇따라 개교해 한말 신학문의 진원지가 되었다.

1946년에는 국립 부산대학과 사립 동아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이 설립되어 영남지방 교육문화의 중추적인 구실을 담당하게 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06개교, 중학교 172개교, 고등학교 160개교가 있다.

전문대학은 경남정보대학교 · 대동대학교 · 동의과학대학교 · 부산보건대학교(구 동주대학교) · 부산경상대학교 · 부산여자대학교 · 부산예술대학교 · 부산과학기술대학교 등 8개교가 있으며, 4년제 대학으로 경성대학교 · 고신대학교 · 동명대학교 · 동서대학교 · 동아대학교 · 동의대학교 · 부산가톨릭대학교 · 부산교육대학교 · 부산대학교 · 부경대학교 · 부산외국어대학교 · 신라대학교 · 한국해양대학교 · 영산대학교 해운대캠퍼스 · 인제대학교 부산캠퍼스 등 15개교가 있다.

각 대학에는 많은 연구기관이 부설되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으며, 해양 · 수산과학 분야의 특색 있는 연구소가 많다. 이밖에 시민을 위한 공 · 사립 도서관이 11개소가 있다. 특히 부산대학교와 동아대학교의 박물관 외에 대연동에 부산시립박물관이 있어 선사시대 · 가야문화 · 대일본 관계의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시민회관을 비롯한 공연장에서는 연중 활발한 문화예술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해마다 10월 5일 이충무공 부산포승첩기념일을 전후해 시민의 날 행사가 종합문화예술제로 거행되고 있다. 언론기관으로는 1946년 창설된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이 있고 한국방송공사부산방송국본부 · 부산문화방송 · 기독교부산방송 · KNN 등의 라디오방송국과 한국방송공사부산텔레비전방송국본부 · 부산문화방송국 · KNN 등의 텔레비전방송국이 있다. 스포츠시설로는 서구 서대신동에 실내체육관 · 수영장 등이 갖추어져 있는 시립 구덕경기장(九德競技場)이 있고, 동래구 사직동에는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부산종합운동장이 있다.

민속

부산에 전해오는 민속놀이로는 역사가 오랜 동래줄다리기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동래야류」 · 「수영야류」 · 「좌수시직할놀이」 및 지방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영농청놀이」 · 「동래학춤」 · 「동래지신밟기」 · 「부산아미농악」 등이 있다. 동래줄다리기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1922년의 연희를 보면 정월 보름날 부산시를 동(좌천동에서 북쪽)과 서(수정동에서 남쪽)로 나누어서 서로 줄을 당겼는데, 한국인 6만 명 중에 2만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이 놀이는 193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복원되어 몇 년마다 한 번씩 연희되는데 그 규모는 처음보다 작아졌다. 동래줄의 특색은 큰 줄이 세 갈래라는 점이다.

부산지방에는 가면극인 야류가 성행했으며, 현재는 동래와 수영에만 전래되고 있다. 「동래야류」의 앞놀이인 군무(群舞) 속에 두꺼비춤이 있고 「수영야류」의 전편에는 길놀이(行列)와 군무 및 잡희가 있다. 부산진에도 야류가 있어 문둥이 · 양반 · 영노 · 할미과장이 있었고 끝머리에 요보지춤과 거북춤이 있었으나 1930년대부터 단절되었다. 「수영농청놀이」는 수영에 전래되는 농요이며, 「좌수영어방놀이」는 수영 · 다대포에 전래되는 어로요인 후릿소리에 맞춰 실제 작업을 통해 구성되는 놀이이다. 이밖에도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에서는 정월대보름에 국제연날리기대회와 단오에 시민그네뛰기대회를 계속 개최하고 있다.

부산은 다른 지방보다 당제가 많으며 성행하고 있다. 2004년 조사에 의하면 부산의 당산계는 287개 마을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중 기장군이 92곳으로 가장 많으며 중구는 2곳에 불과하다. 계열 분류에서 보면 산신계열이 가장 많고, 다음이 인신계열이며 그다음이 지신 · 곡신계열이다. 특히 인신계열에는 입향조 인물을 당산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대부분 기장군에 집중되어 있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고찰의 유래설화로 「범어사의 창사유래」와 「범어사의 매학동자」 · 「마하사의 16나한」 · 「선암사의 꿈」 등이 있고, 샘과 굴에 관한 것으로 「동래온천의 영험」 · 「냉정우물」 · 「새미산베틀굴」 등이 있으며, 풍수설화로 「정묘의 명당」 · 「주전자섬의 금기」 · 「삼성대의 김장군설화」 등이 있다.

목민관에 얽힌 미담으로 「유심(柳心)의 전생모」 · 「한부사(韓府使)의 젓가락」 · 「동래의 관항묘」 · 「옥서계의 망령」 등이 있으며, 서민의 생활설화로 「의적 정봉서」 · 「박권농의 양자」 · 「만덕고개와 빼빼영감」 등이 전해온다. 몇 개 설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래온천의 영험」은 동래 고을에 있는 샘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라 때 동래 고을에 절름발이 노파가 살고 있었다. 노파는 다리를 고치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썼으나 허사라 실망에 차 있었다. 어느 날 다리를 저는 백학이 노파의 집 근처에서 돌아다녀, 노파는 자기의 신세와 견주어 백학을 동정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백학이 왔을 때는 다리를 절지 않고 자유롭게 부근을 몇 바퀴 돌다가 힘차게 날아가 버렸다. 노파가 신기하게 여겨 학이 있었던 곳으로 가보니 따끈따끈한 샘물이 솟고 있어 자기 다리에 여러 번 발랐더니 놀랍게도 절름거리던 다리가 자유로워졌다. 그뒤 이 샘을 온천(溫泉)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부사의 젓가락」은 선정을 베풀었던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배하가 동래부사로 있을 때 가뭄이 들어 절망 상태가 되자 그는 장작더미에 올라가 누워 불을 지르라고 했다. 목민의 장이 무력해 이토록 한발이 심하니 자기가 죽으면 비가 내릴 것이라는 뜻에서였다. 누가 감히 불을 지를 수 있으랴마는 하도 명이 엄한지라 불을 질렀다. 그러나 부사의 몸에 불이 닿으려 할 때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해 가뭄이 해소되었다. 그뒤 한배하는 재상이 되어 선정했으며, 꿈에 동래에서 지내는 제향에 갔다가 첨저(尖箸)를 실제로 놓고 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고장에 전해오는 민요는 「담바구타령」 · 「큰애기」 · 「김매기소리」 · 「후릿소리」 등으로, 그 유형이 다양하며 대부분 지방색을 강하게 띠고 있다. 동래에는 동래담뱃대와 연관하여 담바귀타령이 있다. 담바귀는 담배를 가리키며 한국에 담배가 들어온 이후의 민요이다. 조선 광해군 때 일본에서 들어온 담배에 대한 노래라는 설과, 임진왜란 때 왜군이 동래 · 울산에 오래 주둔하여, 이에 대한 적의가 깔린 노래라는 설도 있으나, 이 타령의 두 가지 사설 중 한 가지에 “대한제국”이라는 어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한말에 지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도드리장단에 의한 단조로운 가락이 반복되는 매우 느린 노래이다. 부산지역에는 멸치잡이 후리질하는 곳이 현재는 없으나 「후릿소리」가 다대포와 수영에 어로요로서 다행히 남아 전한다. 이밖에도 「장타령」 · 「사랑노래」 · 「과부한탄가」 · 「각설이타령」과 수영들놀음 등에서 불리는 「오독도기타령」 등 다수의 민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산업 · 교통

부산은 2·3차산업의 비중이 매우 높은 전형적인 상공업도시이다. 그러나 산업별 인구구성비가 1985년에는 1차산업 4.0%, 2차산업 38.3%, 3차산업 62.3%이던 것이, 1980년대 말을 고비로 2차산업이 줄고 3차산업이 늘어나는 경향이 지속되어 1995년에는 1차산업 2.3%, 2차산업 26.5%, 3차산업 71.2%를 나타내고 있다. 2004년에는 1차산업 1.9%, 2차산업 18.9%, 3차산업 79.2%로 3차 산업이 증가하고 있다.

농업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도시개발로 농경지가 도시적 토지이용으로 전환되고 농업노동력이 유출됨으로써 그 비중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1978년과 1989년에는 김해시 일부 지역, 1995년에는 양산군 일부 지역이 편입되어 농업 비중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보여주었다.

농경지는 강서구와 기장군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그외 금정구 · 북구 · 해운대구의 변두리 일부 지역에 분포한다. 농가당 평균 경지 규모는 호당 1.0㏊ 내외이다.

작물 재배에 있어서는 경제작물의 재배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낙동강 하구의 김해평야는 비옥한 토지, 온난한 기후, 대도시 시장 등의 우수한 입지조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설원예가 발달한 곳이다. 이곳에서 채소 · 화훼 · 과수 등의 작물이 상업적 근교농업의 성격을 띠면서 대규모로 발달하고 있다. 일부 농가는 오리 농법과 저농약 농법 등의 친환경 농업을 하고 있다.

수산업은 개항 당시에는 대구와 청어를 주어종으로 하여 상업 다음 가는 주요 산업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그 비중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수산물의 종류별 생산량을 보면, 어류는 감소하는 반면 해조류 및 패류는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미역 등의 양식업도 활발하다. 그러나 연안어업은 공유수면 매립에 따른 어장의 축소, 연안공동어장의 상실, 공장폐수와 생활하수의 유입으로 연안자원이 감소해 점차 쇠퇴하고 있다.

공업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시작되어 광복 전에는 식료품 · 방직공업 등 경공업이 주를 이루었다. 광복 후에도 풍부한 노동력과 시장잠재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발달했으나, 본격적인 공업 발달은 경제개발계획이 실시된 1960년대 이후부터 이루어졌다. 즉 수입대체 및 수출주도형 산업의 육성정책에 의해 원료 수입 및 제품 수출에 유리한 조건을 바탕으로 섬유 · 금속 · 기계 · 화학공업 등이 급격히 발달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공업배치법에 의한 대도시지역 내 공장 신설 억제 및 대도시공장의 지방분산정책, 공업용지의 부족에 따른 양산 · 김해 등 시외지역으로의 공장 이전, 원자재 및 제품시장의 해외의존성과 노동집약적 경공업 위주의 구조적 취약성 등으로 공업 성장이 둔화되었다. 그 결과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본 전국 비중이 1970년에 14.9%이던 것이 1980년 10.7%, 1990년 7.6%, 1995년 5.1%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1994년을 기점으로 화학 중심의 경공업에서 조립금속 및 기계 · 장비 중심의 중화학공업 위주로 공업구조가 변하고 있다. 특히 1995년 삼성자동차공장의 유치와 더불어 관련업종의 발달에 따른 공업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특히 녹산신호공단이 입지하고 인근에 신항만이 건설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새로운 제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공업지역은 1960년대까지는 영도 · 충무 · 용호 · 동래 · 서면 등 항구를 중심으로 한 도시 내부지역에 발달했으나, 1970년대 이후에는 서부 낙동강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즉, 사상공업단지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장림 · 신평공업단지가 1980년대 전반기에 도시 내에 무질서하게 산재한 공장을 집단화해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새로운 공업용지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특히 사상공업단지는 비법정공단으로 하수시설을 비롯한 기반시설의 미비와 공해업종의 집중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점차 쇠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녹산국가산업단지가 1989년, 신호지방산업단지가 1994년부터 조성되고 있으며, 강서구 지사동에 부산과학지방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 수립되어 있어 낙동강 하구를 중심으로 한 낙동강 연안지역의 비중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

상업활동으로 조선 후기에는 5일 정기시장인 동래장 · 부산장 등의 장시에서 농산물 · 수공업제품 · 어염(漁鹽) 등이 거래되었다. 근대적 상업은 개항 이후에 이루어졌으며, 일제강점기 때 설립된 부평동시장은 전국 최초의 근대적 시장이었다.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한때 침체되었으나, 1960년대 이후 광복동 · 남포동 등이 상업중심지로 크게 성장하였다. 특히 국제시장이 상권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이후 시가지 확장과 더불어 서면 일대가 지리적 중심부가 되면서 새로운 상업중심지로 등장하였다. 그 외 동래 및 온천장 지역, 구포 및 사상지역, 연산동 · 광안동 · 대연동 일대가 상업중심지로 발달하고 있다. 전통 재래시장이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으며 주택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마트가 입지하고 있다.

무역은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과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한때는 부산항이 전국 무역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것이 다른 항구들의 성장과 더불어 비중이 낮아지긴 했으나, 우리나라 컨테이너 수출화물의 컨테이너 화물의 95%를 취급함으로써 여전히 우리나라 최대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교통은 육상 · 해상 · 항공 등이 고루 발달해, 우리나라 교통의 요지로 크게 역할하고 있다. 육상교통의 경우, 철도는 경부선 · 동해남부선과 연결되고, 도로는 경부고속국도 · 남해고속국도 등 고속도로를 비롯해 다수의 국도 및 지방도와 연결되고 있다.

해상교통의 경우, 국제여객항로로 일본과는 부관 페리호가 주 7회 운항하고 있는 부산∼시모노세키 항로를 비롯해 부산∼오사카, 부산∼고베, 부산∼하다카 등 4개 항로, 중국과는 부산∼옌타이, 부산∼상하이 등 2개 항로, 러시아와는 부산∼블라디보스토크 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연안여객항로는 제주를 비롯해 거제 · 충무 · 여수 등의 남해안지역과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쾌속선이 운항되고 있다.

항공교통의 경우, 김해국제공항에는 서울 · 제주 · 양양을 잇는 국내선과 일본과 미국을 비롯해 동남아 지역을 잇는 국제선이 개설 · 운항되고 있다.

도시 내 교통은 지형적 여건으로 도로망이 남북축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고, 상대적으로 동서간 도로망이 취약하다. 더구나 항만이 도심에 위치해 항만화물 차량이 시내도로를 통과하고, 도로율도 전국 대도시 중 가장 낮아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인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주요 도로로는 시내 중심부를 남북으로 잇는 간선도로인 중앙로를 비롯해 동서축의 가야로, 도심에서 발생하는 항만화물을 우회처리하기 위한 부두도로, 항만물동량의 원활한 수송과 도심교통량의 분산수용을 위한 제1도시고속도로, 동서지역을 연결하는 제2도시고속도로(동서고가도로)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항만배후도로 확충 10개년계획의 일환으로 수영대로, 광안대로, 대대항배후도가 건설되었다. 지하철로는 도심의 남북을 관통하는 총연장 32.5㎞의 1호선(노포동∼신평동)과 2호선(북구 호포∼해운대 좌동)이 완공되었고 3호선(구포∼반송)의 일부가 완성되었다.

관광

부산은 우리나라의 관문이며, 온화한 기후에 해변을 따라 발달한 해수욕장과 경승지 및 온천 · 사찰 · 역사유적 등의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따라서 일년 내내 내국인은 물론 외국관광객이 많이 찾는 국제적 관광지이다. 또한 우리나라 10대 관광지에 속하는 경주권 · 제주권 · 한려수도권 · 지리산권 등의 관광권과 연결되는 관광거점도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동백섬과 미포 사이에 위치한 해운대는 우리나라 최대의 해수욕장이자 백사장과 송림이 조화를 이루는 해안경승지이다. 대한팔경의 하나로서, 1994년에 관광특구로 지정된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이곳에는 해운대온천이 있고, 조선비치 · 파라다이스 · 하이야트 등의 특급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각종 위락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여름철이면 100만 명 이상의 피서객이 모여들고 있다.

이밖의 해수욕장으로는 광안리 · 송정 · 송도 · 다대포 · 일광 등이 있으며, 특히 광안리해수욕장 일대에는 카페촌이 형성되어 젊은이들의 명소가 되고 있다. 태종대와 몰운대는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인 기암절벽의 절경을 이루며, 부산항의 상징인 오륙도는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부산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금정산도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다. 금정산의 남쪽 기슭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온천인 동래온천과 동물원 · 식물원을 비롯해 케이블카 등 많은 위락시설이 구비되어 있는 금강공원이 있다. 북쪽 중턱의 수목이 울창한 계곡에는 우리나라 삼대본산의 하나로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범어사가 있으며, 산꼭대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금정산성이 있다.

그외에도 충렬사 · 안락서원 등의 역사유적, 대청공원 · 용두산공원 · 어린이대공원 · 자성대공원 등의 시민공원, 동양 제일의 철새도래지인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 어패류 전문시장인 자갈치시장, 그리고 시립박물관 · 복천동고분박물관 · 유엔묘지 등도 주요 관광지이다.

구 · 군(區 · 郡)
  1. 강서구(江西區)

시의 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181.50㎢, 인구 9만 4608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대저동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했으며 기름진 삼각주평야가 가야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1970년대까지 김해군과 의창군에 속했으나 김해군의 일부 지역이 1978년 부산시의 시역 확장으로 북구에 속했다가 1983년에 시 직할 출장소로 독립했으며, 1989년 김해군 가락면 · 녹산면과 의창군 천가면이 편입되어 구로 승격되었다. 동쪽 지역은 낙동강 하구의 넓은 삼각주평야이며 서쪽은 보배산 · 금병산 등의 산지가 있어서 서고동저의 지세를 보인다. 이 삼각주평야는 우리나라 최대의 전형적인 삼각주로 대저도 · 맥도 · 덕도 · 수봉도 · 둔치도 · 순아도 · 명호도 등의 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토질은 사양토 · 양토 · 식양토 · 식토 등으로 이뤄져 매우 비옥하다. 낙동강 우안의 가락동 일대에는 하천의 범람으로 형성된 넓은 하안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해안지역은 하구에 위치해 육지로부터 유입되는 토사가 퇴적해 간석지가 잘 발달해 있다. 천가출장소가 있는 가덕도(加德島)는 인대봉 · 국수봉을 중심으로 산지가 발달했고 동남쪽 해안에는 100m에 달하는 해식애가 형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삼각주로 도시 근교농업이 발달하여 있는 곳이다. 법정동으로 대저1(大渚一) · 대저2· 강동(江東) · 명지(鳴旨) · 죽림(竹林) · 식만(食滿) · 죽동(竹洞) · 봉림(鳳林) · 구랑(九郎) · 송정(松亭) · 화전(花田) · 녹산(菉山) · 생곡(生谷) · 지사(智士) · 미음(美音) · 범방(凡方) · 신호(新湖) · 성북(城北) · 동선(東仙) · 눌차(訥次) · 천성(天城) · 대항(大項) 등 22개 동이 있다.

  1. 금정구(金井區)

시의 북부에 위치한 구. 면적 65.27㎢, 인구 24만 6026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부곡동이다. 1547년(명종 2)까지 동래군 동평현에 속했다가 1599년(선조 32) 동래도호부가 동래부로 승격되면서 동래부에 속하게 되었다. 1910년에는 부산부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에 편입되었다. 1942년 부산부의 확장으로 부곡동 · 장전동 · 금사동 · 서동 · 회동동 · 오륜동 등의 일부 지역이 다시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63년 동래군 북면에 속했던 나머지 지역이 동래군 북면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78년 금성동이 부산진구로부터 동래구에 편입되었다. 1988년 동래구의 인구증가로 장전동 · 부곡동 · 서동 등의 북쪽 지역이 분리되어 금정구가 신설되었다. 북쪽에는 계명봉이, 서쪽에는 금정산봉이, 동쪽에는 공덕산 · 개좌산을 잇는 능선이 구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남쪽으로 트인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구의 동부에는 수영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며, 수영강의 지류인 온천천이 구의 중앙부를 흐르고 있다. 온천천을 따라 주요 교통로와 주택지구가 발달했으며, 수영강 중류의 오륜동에는 부산시의 식수공급원인 회동저수지가 있다. 금정산을 끼고 있어 환경이 쾌적하여 부산의 대표적인 주거지역 중의 하나이다. 법정동으로 부곡(釜谷) · 서(書) · 오륜(五倫) · 금사(錦絲) · 장전(長箭) · 선(仙) · 두구(杜邱) · 노포(老圃) · 청룡(靑龍) · 남산(南山) · 구서(久瑞) · 금성(金城) · 회동(回東) 등 13개 동이 있다.

  1. 남구(南區)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구. 면적 26.81㎢, 인구 28만 3101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대연동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 서하면 · 용주면 · 남면에 속했다. 1942년에 동래군의 수영과 해운대 일부가 부산부에 편입되면서 수영출장소가 설치되었다. 광복 이후 1949년에 시제 실시와 더불어 부산시에 속하게 되었다. 1975년에 수영출장소를 편입하면서 남구로 승격하였다. 1995년에 남천동 · 수영동 · 망미동 · 광암동 · 민락동이 수영구로 분리되었다. 북쪽은 황령산과 금련산의 연봉이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 지역은 부산만과 수영만의 경계를 이루는 우암반도에 해당한다. 적기반도로도 불리는 우안반도의 말단부는 대부분 급경사의 암석해안으로 이뤄져 있으며, 오륙도와 연결된다. 오륙도는 밭섬(등대섬) · 굴섬 · 송곳섬 · 수리섬 · 방패섬 · 솔섬 등 여섯 개 섬으로 이뤄졌으나, 썰물 때 방패섬과 솔섬이 연결되어 다섯 개 섬으로 보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부산에서 고급주택지구가 최초로 형성된 지역으로 황령산 기슭은 단독주택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법정동으로 대연(大淵) · 용호(龍湖) · 용당(龍塘) · 감만(戡蠻) · 우암(牛巖) · 문현(門峴) 등 6개 동이 있다.

  1. 동구(東區)

시의 중앙 남단에 위치한 구. 면적 9.73㎢, 인구 9만 2069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수정동이다. 조선시대 부산진첨사의 첨성(僉城)이 있었던 곳으로 국방의 요지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산부에 흡수되었다. 1951년 초량출장소가 개설되었고, 1957년 구제 실시에 따라 동구로 승격되었다. 북서쪽에는 높이 300∼400m의 산지가 연봉을 이루고 남동쪽이 바다에 연해 배산임해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하천은 부산천 · 초량천 · 호계천 등이 있으며, 하천유역과 해안지역, 산기슭 하천 주변을 중심으로 취락이 발달해 있다. 현재 범일동 · 수정동 · 초량동 등의 해안지역은 대부분 매축지로 조성된 곳이다. 해방이후 해외동포의 귀환과 한국전쟁 때 피난민의 유입으로 이곳의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수정산 · 구봉산 등의 산기슭을 중심으로 분지 지역에 무허가 취락들이 형성되면서 주택지구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동시에 철도교통과 해운의 중심이 되었다. 수정동에는 두모포왜관이 있었다. 법정동으로 수정(水晶) · 초량(草梁) · 좌천(佐川) · 범일(凡一) 등 4개 동이 있다.

  1. 동래구(東萊區)

시의 북동쪽에 위치한 구. 면적 16.63㎢, 인구 27만 2837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복천동이다. 1910년에 부산부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이 되었고, 1942년에 부산부 동래출장소가 되었다. 1949년에 시제 실시와 더불어 부산시에 속하게 되었고, 1957년 구제 실시로 동래구로 승격되었다. 1978년에 반여동 · 반송동 · 재송동 · 석대동이 분리되어 해운대출장소에 편입되는 한편 부산진구 금성동을 편입하였다. 1988년에 서동 · 금사동 · 오륜동 · 부곡동 · 장전동 · 선동 · 두구동 · 노포동 · 청룡동 · 남산동 · 구서동 · 금성동 등 북부지역이 금정구로 분리되었다. 1995년에 거제동과 연산동이 연제구로 분리되었다. 동쪽은 장산, 서쪽은 금정산릉이 둘러싸고 있고 남북으로 열린 분지 지형을 이룬다. 수영강의 지류인 온천천이 북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며, 하천 연변의 침식분지에 시가지가 발달해 있다. 온천으로 유명하다. 과거 동래읍성이 있던 곳은 단독주택이 형성되었으며 온천동 일대에는 고급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사직동과 안락동 일대는 신흥주택지역으로 개발되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지하철이 개통되고 도시 산업도로가 이곳을 지나면서 부산의 도심 역할을 하고 있다. 법정동으로 수안(壽安) · 낙민(樂民) · 복천(福泉) · 칠산(漆山) · 명륜(明倫) · 온천(溫泉) · 사직(社稷) · 안락(安樂) · 명장(鳴藏) 등 9개 동이 있다.

  1. 부산진구(釜山鎭區)

시의 중앙에 위치한 구. 면적 29.70㎢, 인구 38만 1572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부암동이다. 본래 동래군이었으나, 고려시대에 양산군에 편입되었고, 1405년 다시 동래군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평면에서 서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36년 부산부에 편입되면서 부산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57년 구제 실시에 따라 부산진구가 되었다. 1963년 직할시 승격과 함께 구포읍과 사상면이 편입되었으며, 1978년 학장동 일부가 서구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북서쪽과 서쪽에는 백양산과 엄광산 등 비교적 높은 산지가 솟아 있으며, 동쪽은 황령산지에 면해 있어 전체적으로 분지 지형을 이룬다. 백양산에서 발원한 동천은 부전천과 전포천을 합류해 넓은 침식평야를 이루고 부산항에 유입한다. 호안공사가 잘 되어 있으나 홍수시 만조가 되면 침수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들 하천에 의해 형성된 개금동 일대의 침식평지는 서면에서 북구로 통하는 주요 교통로로 이용된다. 황령산과 금련산 사이의 마비치고개는 옛날 동래와 부산을 잇는 유일한 교통로였으며 지금은 연산로터리와 서면을 잇는 간선도로가 개통되어 있다. 법정동으로 부전(釜田) · 범전(凡田) · 연지(蓮池) · 초읍(草邑) · 양정(楊亭) · 전포(田浦) · 부암(釜巖) · 당감(堂甘) · 가야(伽倻) · 개금(開琴) · 범천(凡川) 등 11개 동이 있다.

  1. 북구(北區)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36.09㎢, 인구 23만 7711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구포동이다. 일제강점기에는 1910년에 부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 구포읍 · 사상면이 되었다. 광복 이후 1963년에 부산직할시 승격 때 부산으로 편입되어 구포읍과 사상면이 각각 부산진구 구포출장소와 사상출장소가 되었다. 1975년 부산진구의 구포 · 사상출장소를 통합해 시직할 북부출장소가 되었다. 1978년에 북구로 승격했으며, 이 때 편입한 김해군 대저읍 · 가락면 · 명지면 일원은 1983년에 시직할 강서출장소가 되었다. 1989년에 강서출장소가 강서구로 승격, 분리되었다. 1995년에 삼락동 · 모라동 · 덕포동 · 괘법동 · 감전동 · 주례동 · 학장동 · 엄궁동 등 과거 사상출장소 관할 지역이 사상구로 분리되었다. 금정산 · 백양산 등의 산지가 동쪽에 있으며, 서쪽에 낙동강이 흐른다. 부산 서북부의 관문 역할을 하면서 김해 · 양산을 포함하는 광역도시권의 교통중심지로, 남해고속도로가 제2낙동교를 통과하며, 구포대교와 경부선 철도의 구포역이 위치하면서 이 지역은 빠른 속도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주택지구로는 만덕동 · 화명동 · 금곡동 등을 중심으로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특히 화명동과 금곡동은 대규모 택지조성과 더불어 서낙동강변의 신흥주거지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법정동으로 구포(龜浦) · 금곡(金谷) · 화명(華明) · 덕천(德川) · 만덕(萬德) 등 5개 동이 있다.

  1. 사상구(沙上區)

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36.09㎢, 인구 23만 7711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감전동이다. 일제강점기에는 1910년에 부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 사상면이 되었다. 광복 이후 1963년에 부산시가 직할시로 승격할 때 부산진구 사상출장소가 되었다가 1975년에 구포출장소와 통합되어 시 직할 북부출장소가 되었으며, 1978년에 북구로 승격하였다. 1995년에 삼락동 · 모라동 · 덕포동 · 괘법동 · 감전동 · 주례동 · 학장동 · 엄궁동 지역이 북구로부터 분리되어 사상구가 되었다. 서쪽은 낙동강과 경계를 이루고, 동쪽은 백양산, 남쪽은 구덕산 · 승학산이 둘러싸여 있어, 남동부는 높고 북서부로 열린 지형을 이룬다. 1960년대 이후 이곳에 공업단지가 조선되고 택지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지역은 급속하게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공업단지가 입지하면서 모라1동 · 덕포1동은 공업단지와 주택가 주변에 영세상가가 밀집하였다. 모라동은 신흥주거지역으로 아파트단지가 밀집해 있고, 학장동 · 덕포동 · 주례동 등도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이다. 법정동으로 삼락(三樂) · 모라(毛羅) · 덕포(德浦) · 괘법(掛法) · 감전(甘田) · 주례(周禮) · 학장(鶴章) · 엄궁(嚴弓) 등 8개 동이 있다.

  1. 사하구(沙下區)

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구. 면적 41.75㎢, 인구 33만 7781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당리동이다. 본래 동래현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 사하면이 되었다. 1924년 부산부로 편입되어 현재의 서구가 된 서부출장소의 한 지부가 되었다가 1951년 부산 서부출장소 사하지소가 되었다. 1957년 구제 실시에 따라 서구 사하출장소로 개칭되었다. 1975년 시 직할 출장소로 승격되었고, 1983년 사하구로 승격되었다. 태백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해 남쪽의 해안지역은 리아스식해안을 이루고 북서쪽은 산으로 둘러싸인 소규모의 침식곡저평야가 발달하였다. 서쪽 낙동강 하구 유역에는 하천퇴적 지형으로서 을숙도 · 일웅도 등의 삼각주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장림동과 다대동에 이르는 하천 연변은 낙동강에서 운반되는 토사가 퇴적되어 삼각주가 계속 형성되고 있다. 다대반도의 동남쪽에는 두송반도가 있어 서쪽으로는 다대만, 동쪽으로는 서구의 암남반도와 감천만을 이룬다. 해안지역은 대부분 급경사의 암석해안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말단부에는 사주 발달로 육계도화한 몰운대에 사빈해안이 있다. 도서로는 경도(고래섬) · 쥐섬 · 솔섬 등이 있다. 부산의 도시산업화와 항만산업의 발달로 사하구도 급속히 변하기 시작하였다. 감천만이 부산 북항의 보조항만으로 되고, 다대포에도 항만시설이 들어섰다. 1987년 낙동강 하구둑이 건설되고 1994년 지하철 1호선의 연장개통으로 부산의 외곽지역과 도심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하였다. 신평 · 장림공단 등이 입지하여 부산 경제의 중심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법정동으로 당리(堂里) · 괴정(槐亭) · 하단(下端) · 신평(新平) · 감천(甘川) · 장림(長林) · 다대(多大) · 구평(舊平) 등 8개 동이 있다.

  1. 서구(西區)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13.93㎢, 인구 11만 5963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서대신동2가이다. 본래 동래군 사하면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51년 서부출장소가 설치되고, 1957년 서구로 승격하였다. 당시의 서구는 사하출장소를 관장하고 있었으나 1975년 사하출장소가 시 직할이 됨에 따라 현재의 구역만 관장하게 되었다. 1978년에는 부산진구의 학장동 일부가 서대신동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에는 사하출장소가 구로 승격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북쪽은 지세가 험준하고 연봉의 일부가 남쪽으로 줄기를 뻗어 천마산(天馬山, 332m) · 장군산(將軍山, 152m)을 이루며 남항을 감싸는 반도로 연결된다. 엄광산의 서남쪽으로 계곡이 발달해 시민공원으로 이용된다. 구덕산의 구덕고개에 이르는 길도 시민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고 구덕고개에는 터널이 개통되어 있다. 해안에 연해 있는 암남반도는 산지와 만나 급경사 해안지형을 이룬다. 서쪽의 두송반도(頭松半島)와 감천만은 부산항의 보조항으로 이용되고 있다. 동쪽 충무동 일대의 남항은 수심이 깊어 어선의 출입이 원활하며 송도에는 사빈해안이 발달하였다. 부산의 관공서 · 교육 · 의료 기관 등 공공시설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으며, 공동어시장, 수산물 가공공장이 많아 수산물 집산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도심지역인 중구와 인접한 대신동 · 부용동 · 부민동 일대는 주택지로 개발되어 최근까지 부산시의 고급주택지구를 이루고 있다. 특히 동대신동은 부산의 대표적인 주택지구이다. 부민동에는 아미산 기슭에 주택지구가 형성되어 있다. 대신동은 구덕운동장과 많은 학교가 밀집해 교육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다. 법정동으로 서대신동2가(西大新洞二街) · 서대신동1가 · 서대신동3가 · 동대신동1가(東大新洞一街) · 동대신동2가 · 동대신동3가 · 부민동1가(富民洞一街) · 부민동2가 · 부민동3가 · 부용동1가(芙蓉洞一街) · 부용동2가 · 토성동1가(土城洞一街) · 토성동2가 · 토성동3가 · 토성동4가 · 토성동5가 · 아미동1가(蛾嵋洞一街) · 아미동2가 · 초장(草場) · 충무동1가(忠武洞一街) · 충무동2가 · 충무동3가 · 남부민(南富民) · 암남(巖南) 등 24개 동이 있다.

  1. 수영구(水營區)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구. 면적 10.21㎢, 인구 17만 9795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남천동이다.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 남면에 속했다. 1936년에 부산부에 편입된 동래군 남면 일부가 부산진출장소에, 1942년에 편입된 동래군의 수영과 해운대 일부가 수영출장소에 속했다. 광복 이후 1949년에 시제 실시와 더불어 부산시에 속하게 되었다. 1953년에 대연출장소와 해운대출장소에 속했다가 1957년에 구제 실시에 따라 부산진구 대연출장소와 동래구 수영출장소에 속했다. 1975년 대연출장소가 수영출장소를 편입해 남구로 승격되면서 남구에 속하게 되었으며, 1995년에 남천동 · 수영동 · 망미동 · 광안동 · 민락동이 남구로부터 분리되어 수영구가 되었다. 금련산맥의 남서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서북부지역은 금련산 및 황령산의 연봉과 배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에는 해운대구와 경계를 이루는 수영강이 흐르며, 남동부 해안지역에 광안리해수욕장이 있다. 광안리해수욕장은 너비가 약 200m에 이르는 대규모 사빈해안으로 이뤄져 있다. 수영강 하구에도 사빈해안이 발달했으나 오늘날은 매립되어 요트경기장 · 주택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이곳은 해안에 입지하면서 남천동, 광안동을 중심으로 주택지구로 변모되고 인구가 증가하였다. 주택지역으로 남천동은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었고 특히 1970년대 말 이후 매립지에 대형아파트를 건립하기 시작한 남천동의 해안지역 일대는 대단위 고급아파트단지가 질서정연하게 조성되어 부산의 대표적인 아파트촌을 형성하고 있다. 수영로터리를 중심으로 하는 수영로 일대는 해운대 및 광안리해수욕장의 입구로 각종 위락시설과 상업기능이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법정동으로 남천(南川) · 수영(水營) · 망미(望美) · 광안(廣安) · 민락(民樂) 등 5개 동이 있다.

  1. 연제구(蓮堤區)

시의 중앙에 위치한 구. 면적 12.08㎢, 인구 21만 718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연산동이다.1910년에 부산부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래군에 속했다. 1942년 부산부에 다시 편입되어 동래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광복 이후 1949년에 시제 실시와 더불어 부산시에 속하게 되었고, 1957년에 구제 실시로 동래구 관할이 되었다. 1995년에 동래구에서 거제동과 연산동을 분리해 연제구가 되었다. 구 이름은 연산동의 연(蓮)과 거제동의 제(堤)를 따서 연제구(蓮堤區)로 제정되었다. 남부에는 황령산과 금련산을 잇는 산지가 둘러싸고 있고, 북서부에도 금정봉과 금용산을 잇는 산지지역이 나타난다. 중앙에는 거제동과 연산동을 경계 짓는 거제천이 흐르며, 북동부에는 온천천이 흐르다가 동부의 연산동에서 수영강과 합류한다. 따라서 시가지는 대체로 남서부에서 북동부로 연결된 중앙로와 지하철 1호선이 온천천 부근의 평지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도시산업화로 부산 도시 공간이 확장되고 특히 서면 쪽으로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이에 인접한 연제구는 급속한 지역변화를 겪게 되었다. 특히 1997년 부산시청 · 부산시의회 · 부산지방경찰청의 신청사가 건립되어 이전하고 뒤이어 부산 지방법원, 고등법원, 지방 검찰청, 고등검찰청 등이 이전하면서 부산의 행정 · 사법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법정동으로 거제(巨堤) · 연산(蓮山) 등 2개 동이 있다.

  1. 영도구(影島區)

시의 남부에 위치한 구. 면적 14.15㎢, 인구 12만 9385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청학동이다. 고려시대에 동삼동에 목장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국마를 길러 목도(牧島)라고도 했다. 동래부에 속했으며 1881년 절영도진이 설치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개항 후 선창의 확장과 1934년 영도대교의 준공으로 급격히 발전해 1951년 영도출장소가 설치되고 1957년 구제 실시에 따라 영도구로 승격되었다. 섬 중앙에 주봉인 봉래산(蓬來山, 395m)이 솟아 있으며, 동삼동 일대에 구릉성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남구의 적기반도와는 북항을, 서구의 암남반도와는 남항을 이루고 있다. 북동부의 매립지역을 제외하고 해안지역은 대부분 급경사의 암석해안을 이루고 있으며, 태종대의 일부 지역에서는 자갈해안이 나타난다. 주요 도서로는 조도(朝島)와 생도(生島)가 있다. 조도는 일명 아치섬 · 앗치섬 또는 동백섬이라고도 불리며 영도와는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다. 생도는 태종대 남쪽에 있는 무인도로서 동이 또는 주전자처럼 생겼다 하여 동이섬 · 주전자섬이라고도 한다. 이곳에 우리나라 지도 작성의 기점이 되는 삼각점이 있다. 해방 이후 해외 동포가 귀환하고 한국전쟁 중 피난민이 유입되면서 부산지역 중 특히 영도 일대의 산록에 취락이 집중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6·25전쟁 때 피난민들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산기슭에 주거지구가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가옥의 규모가 작고 무질서하게 배치된 불량주택지구가 산록을 따라 밀집되었다. 법정동으로 대교동2가(大橋洞二街) · 대교동1가 · 대평동1가(大平洞一街) · 대평동2가 · 남항동1가(南港洞一街) · 남항동2가 · 남항동3가 · 영선동1가(瀛仙洞一街) · 영선동2가 · 영선동3가 · 영선동4가 · 신선동1가(新仙洞一街) · 신선동2가 · 신선동3가 · 봉래동1가(蓬萊洞一街) · 봉래동2가 · 봉래동3가 · 봉래동4가 · 봉래동5가 · 청학(靑鶴) · 동삼(東三) 등 21개 동이 있다.

  1. 중구(中區)

시의 남부에 위치한 구. 면적 2.83㎢, 인구 4만 5816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대청동1가이다. 1951년 중부출장소를 설치했고 1957년 구제 실시에 따라 중구로 개편되었다. 북쪽에는 보수산 · 복병산이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천혜의 양항인 부산항을 끼고 동으로는 영주천, 서로는 보수천이 흘러 배산임해의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 복병산의 지맥인 용두산이 구의 중앙에 위치해 구를 동서로 나누고 있다. 중구는 부산시에서 대지와 도로율이 가장 높은데 이는 이 지역 일대가 매립되어 계획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1912년 완공된 영선산 착평공사로 현재의 중앙로가 형성되었고, 중앙동 · 대창동 · 남포동 일대의 바다가 매립되어 택지와 상가지로 조성되었다. 따라서 매립된 해안의 저지는 주로 도심 중심기능을 담당하며 중심상가지로 발전하였다. 12개 구 중 인구와 면적이 가장 작으나 부산의 중심지로서 시청을 비롯한 100여 개의 금융기관과 7000여 개의 사무실이 집중된 행정 · 상업 · 중심업무 기능지역이다. 법정동으로 대청동1가(大廳洞一街) · 대청동2가 · 대청동3가 · 대청동4가 · 중앙동1가(中央洞一街) · 중앙동2가 · 중앙동3가 · 중앙동4가 · 중앙동5가 · 중앙동6가 · 중앙동7가 · 대창동1가(大昌洞一街) · 대창동2가 · 동광동1가(東光洞一街) · 동광동2가 · 동광동3가 · 동광동4가 · 동광동5가 · 보수동1가(寶水洞一街) · 보수동2가 · 보수동3가 · 부평동1가(富平洞一街) · 부평동2가 · 부평동3가 · 부평동4가 · 광복동1가(光復洞一街) · 광복동2가 · 광복동3가 · 신창동1가(新昌洞一街) · 신창동2가 · 신창동3가 · 신창동4가 · 창선동1가(昌善洞一街) · 창선동2가 · 남포동1가(南浦洞一街) · 남포동2가 · 남포동3가 · 남포동4가 · 남포동5가 · 남포동6가 · 영주(瀛州) 등 41개 동이 있다.

  1. 해운대구(海雲臺區)

시의 동부에 위치한 구. 면적 51.47㎢, 인구 42만 2818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중동이다. 본래 동래현에 속했다가 고려시대에 울주에 병합되었다. 조선시대에 다시 동래부 남촌에 속했고 조선 말기에 남하면으로 편입되었다. 1942년 부산부 수영출장소에 속했다가 1953년 해운대출장소로 분리되었다. 1957년 구제가 실시되면서 동래구에 편입되었다. 1976년 시 직할 출장소로 승격했으며, 1978년 동래구 반여동과 반송동이 편입되었고, 1980년 해운대구로 승격되었다. 구의 대부분이 산지이며, 중앙에 장산이 위치한다. 평지는 산기슭의 해안 말단부와 수영천 · 해운대천의 주변 및 반송천과 수영천의 합류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해안은 암석해안이 대부분이나, 해운대 · 송정 일대에 사빈해안이 넓게 발달했다. 수영천 하구에 재송포가 있었으나 수영천변에 충적지가 형성되어 포구로서의 기능은 없어졌다. 기장군에 접하고 있어 농업이 비교적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상업기능은 주로 관광기능을 중심으로 우동의 해운대역 주변에 발달하였다. 주거지역은 해안과 하천 연변을 따라 분포한다. 반여동 · 반송동은 도심의 재개발사업 때 이전한 주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해운대 동쪽 와우산 일대에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우동은 신흥 고급주택지이다. 2016년 말 개통된 전철 동해선이 통과하며, 도로는 우동 · 재송동을 지나 도시고속도로와 교차되며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우동 · 중동 일대의 해운대는 사빈해안과 암석해안이 조화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임해관광지이다. 해수욕장 · 동백섬 · 온천 · 달맞이길 등의 천혜의 관광자원과 완벽한 숙박시설, 유람선 등을 위시한 각종 기반시설이 결합되어 관광 · 피한 · 피서지의 명소로 꼽힌다. 중(中) · 우(佑) · 좌(佐) · 송정(松亭) · 재송(栽松) · 반여(盤如) · 석대(石台) · 반송(盤松) 등 8개 동이 있다.

  1. 기장군(機張郡)

부산광역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군. 면적 218.32㎢, 인구 15만 3093명(2015년 현재). 군청 소재지는 기장읍 신천리이다.1895년 을미개혁(乙未改革)에 따라 지방 행정구역을 23부, 336군으로 정비하고 8도제를 폐지하면서 기장현은 동래 · 양산 · 울산과 나란히 동래부(東萊府)의 기장군이 되었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기장군 일대를 중심지로 부산부의 1개 면을 합쳐서 동래군이라고 개칭하였다. 1963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울주군의 서생면과 온양면(溫陽面)의 일부를 기장에 편입하였다. 1986년 11월 1일에 양산군 동부출장소(東部出張所)를 설치해 기장읍 · 장안읍 · 정관면 · 철마면 · 일광면을 관할해 오다가, 1995년 3월 1일부산광역시 기장군이 되었다. 태백산맥의 지맥인 대운산맥이 북동∼남서방향으로 뻗어내려 형성된 산지가 주를 이룬다. 대운산(大雲山, 742m)은 군의 북쪽에 위치하며, 양산시와 울산광역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효암천(孝巖川) · 장안천(長安川) 등이 산지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유입한다. 기장읍 대변리, 일광면 이천리, 장안읍 월내리 등에 소만(小灣)이 형성되어 있다. 수려한 해안선과 천혜의 자연경관과, 역사적인 문화유적이 풍부하다. 그리고 해운대해수욕장을 중심으로 국제적 관광지를 이루고 있는 해운대관광특구가 인접하고 있어 관광개발의 잠재력이 풍부한 지역이다. 법정동리로 기장읍(機張邑), 장안읍(長安邑), 정관읍(鼎冠邑, 2015년 승격), 일광면(日光面), 철마면(鐵馬面) 등 3개 읍, 2개 면이 있다.

참고문헌

『부산통계연보』(부산광역시, 2005)
『부산교육통계연보』(부산광역시 교육청, 2005)
『시정백서』(부산광역시, 2005)
『한국지리지』(건설부국립지리원, 2005)
『군정백서』(부산광역시 기장군, 2005)
『구정백서』(부산광역시 동래구, 2005)
『구정백서』(부산광역시 연제구, 2005)
『구정백서』(부산광역시 남구, 2005)
『구정백서』(부산광역시 수영구, 2005)
『구정백서』(부산광역시 북구, 2005)
『구정백서』(부산광역시 사상구, 2005)
『부산지명총람』1·8(부산시사편찬위원회, 2003)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2)
『기장군 문화유적과 기층문화』(김승찬 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1997)
『동래구지』(부산광역시 동래구, 1995)
『남구지』(부산직할시 남구,1994)
『동래향토지』(부산직할시 동래구, 1993)
부산시청(www.bu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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