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양대신아문필담 ()

근대사
문헌
1880년대에 조선사절 남정철과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이 외교문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수록한 역사서. 필담기록물.
정의
1880년대에 조선사절 남정철과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이 외교문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수록한 역사서. 필담기록물.
개설

2권 1책. 1885년 1월 청나라에 파견된 조선의 사절인 남정철이 북양대신 이홍장, 천지해관도(天津海關道) 주복(周馥) 등과 함께 양국 간의 현안에 관해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인 그 해 겨울,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임명된 남정철은 동지정사 김만식을 수행해 북경을 방문하였다.

이때 남정철은 별도로 천진의 북양아문에 가서 이홍장과 주복을 만나 조선과 청나라의 현안 문제에 관해 필담(筆談)을 나누었다. 이때의 필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현재 장서각도서에 있다.

내용

제1권은 ‘을유정월이십사일북양대신아문필담(乙酉正月二十四日北洋大臣衙門筆談)’, 제2권 ‘해관도서필담(海關道署筆談)’이다.

전자는 남정철이 이홍장과 나눈 필담 내용(24쪽)으로 6개항에 걸쳐 개진한 조선측의 의견과 그중 일부에 대해 이홍장이 언급한 내용을 싣고 있다. 후자는 주복과 나눈 필담 내용(11쪽)으로 제2권은 여타의 일부 항목에 대해 주복이 별도로 응답한 내용을 싣고 있다.

이때 남정철이 언급한 것들은 ① 갑신정변의 성격과 사후 처리 문제, ② 보정부에 연금된 대원군 용도의 송금에 관한 것, ③ 의주 상민의 무역 활동에 관한 것 등이다.

이 밖에 ④ 구련성(九連城) 개잔(開棧)과 삼세(蔘稅 : 15%) ⑤ 1882년에 체결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내의 한성 개잔(開棧)에 관한 것, ⑥ 강희(康熙) 연간에 세운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土門江) 경계선의 위치 재확인 문제 등이다.

일차적으로는 갑신정변과 대원군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의 중요한 목적은 종래 조선이 청국과 체결한 무역장정(貿易章程)과 국경무역세칙(國境貿易細則)을 조선측에 다소 유리하게 수정해 보려고 시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무역장정이란 조중상민수륙무역장정(1882.8.23)이며 국경무역세칙이란 봉천여조선변민교역장정(奉天與朝鮮邊民交易章程: 일명 中江通商章程, 1883.4), 길림여조선상민수시무역장정(吉林與朝鮮商民隨時貿易章程, 1883.9) 등이다. 이것들은 청국이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문서로서 확인함과 동시에 조선에서 청국 상인의 활동을 유리하게 한 것이었다.

의의와 평가

본 자료의 전체 분량을 적지만, 그 당시 조선과 청국이 갑신정변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고, 그에 개입한 일본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양국 상인들의 내지 활동과 국경무역, 국경선 문제 등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었는지 등을 단편적이나마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북양대신아문필담(北洋大臣衙門筆談)』
「조·중상민수륙무역장정(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에 대(對)하여」(김종원, 『역사학보(歷史學報)』 32, 1966)
집필자
이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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