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민을 방어하기 위하여 북쪽 변경에 설치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58년(태종무열왕 5) 3월에 태종무열왕이 하슬라(何瑟羅: 지금의 강릉) 땅이 말갈과 연접하여 백성이 편안하지 못함을 이유로 이곳에 설치되었던 북소경(北小京)을 폐하여 주(州)로 삼고 도독(都督)을 두어 지키게 하였으며, 실직(悉直: 지금의 강원도 삼척)으로 북진을 삼았다고 한다.
즉 태종무열왕대의 북진은 말갈을 방어하기 위하여 동북해안의 요새지인 실직에 설치되었다. 그뒤의 북진에 관해서는 886년(헌강왕 12) 봄에 북진에서 조정에 보고하기를 “적국인(狄國人)이 진(鎭)에 들어와 보로국(寶露國)이 흑수국인(黑水國人)과 함께 신라에 화통하겠다고 쓴 판자 조각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갔으므로 그것을 취하여 바친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의 북진은 당시 신라 동북국경의 요지인 삭정군(朔庭郡: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에 설치된 듯하다. 그러므로 신라의 북진은 북쪽 국경의 변경에 따라 설치된 지역이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북진뿐만 아니라 패강진(浿江鎭)·청해진(淸海鎭)·당성진(唐城鎭)·혈구진(穴口鎭) 등의 진을 일정한 지역 혹은 방면에 설치하여 군사적 방어의 중심지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