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문학예술』 신인특집에 당선되어 7월호에 발표되었다. 제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선우휘의 작가적 위치를 굳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과도기에 처해 있는 한 인물을 통해, 그 갈등과 방황의 끝에서 제기된 결단의 문제를 형상화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고현(高賢)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여기에는 삼대가 등장한다. 현의 아버지는 만세시위에 앞장섰던 투사적 인물이며, 이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할아버지는 완고한 전근대적 인물의 전형이다. 현은 유복자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집안의 모든 화근이 선친의 묏자리가 나쁜 탓이라고 생각하며 현실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고 소극적이다. 현이 소년시절 할아버지의 혹을 조롱하는 아이들과 싸워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에도 칭찬은커녕 도리어 심한 야단을 맞는다. 이 사건은 어린 현에게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현은 소심하고 방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불온한 ‘독서회’ 사건으로 M선생이 고등계 형사에게 끌려가도, 중학을 졸업하고 동료들이 젊은이다운 패기로 미래를 이야기할 때에도 현은 국외자적(局外者的)으로만 행동하고 갈등으로 번민하기만 한다. 어머니의 권유로 대학에 가고 학병으로 끌려 나갔다가 결국 탈주하여 해방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여교사의 부친이 인민재판에 끌려나온 것을 보고, 현은 지금까지 자신을 지배해오던 할아버지와 같은 사고와 행동에서 탈피하여 아버지와 같은 태도로 현실과 맞서게 된다. 이러한 급전환의 계기를 통해 현은 비로소 자기를 발견하고, 불꽃이 이는 가슴으로 현실에 대한 행동적 의지를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