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9월 『문학예술』에 발표된 2막극으로 1960년 희곡집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에 수록되어 있다.
서울의 종로 한복판에 고층빌딩이 건축되면서 최 노인의 낡은 기와집은 졸지에 빌딩 숲 속의 그늘로 전락해가고 만다. 그 그늘 속에서 화초나 가꾸면서 구식 혼구상(婚具商)을 꾸려 가는 최 노인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자식들은 생계를 위해 집을 팔아서 변두리로 나가 새로운 생활을 꾸려갈 것을 제안하지만, 최 노인은 가문의 뿌리를 없애는 것을 완강하게 반대한다. 장남은 제대 군인으로서 오랫동안 실업자로 허송하고 있으며, 큰딸은 영화배우를 지망하는 허영심 많은 처녀로서 꿈만 꾸고 있어, 생계는 출판사에서 힘들게 벌어들이는 둘째딸에 의해 겨우겨우 꾸려질 뿐이다.
이들 가족은 각자의 역할과 현실적인 입장에 따라 각각 갈등을 드러내며, 결국에는 비극적인 결말에 부딪치게 된다. 돈이 없어서 취직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비관한 장남은, 마침내 취업통지서가 전보로 전달된 그 순간에, 권총으로 보석상을 털려다 붙잡힌 강도로 등장한다. 영화배우 지망생인 큰딸은 스타의 꿈을 위하여 자신의 육체까지 바쳤지만 사기를 당한 채 귀가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결국 자살하고 만다.
이렇듯 구시대의 전통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쳤던 최 노인의 모습과 그에 따라 비롯된 가족간의 갈등과 비극은 새 시대를 맞기 위한 진통의 역설적 현실이기도 하다. 한 가족의 이러한 비극적 삶은, 하늘을 향해 치솟은 고층건물의 모습과 대조되어, 전후의 불모(不毛)의 현실적 모순을 상징적으로 제시해 준다. 이 작품에서 최 노인과 자식들의 면모는 전후시대의 세대의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며, 전후의 시대상을 냉철하게 드러내준다. 이러한 특징은 일반적으로 1950년대 희곡의 대표적인 경향을 형성한다. 또 전후의 어둡고 불안한 사회상황을 한 가족의 생활 단면을 통해 집약적으로 드러낸 사실주의 작품으로, 1950년대의 시대상을 잘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희곡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