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산내 말사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을 봉안할 목적으로 창건하였다. 1606년(선조 36) 퇴락한 절을 중창하여 사고사(史庫寺)라고 하였다. 풍수설에 따르면 이곳은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땅이라고 하며, 유정(惟政)이 터를 잡았다고 전하나 신빙성은 없다.
임진왜란의 병화를 피하기 위해 조정에서는 실록을 여러 곳에 나누어 봉안할 것을 결정하였고, 묘향산·태백산·강화도 등과 함께 이 오대산에 사고를 지었던 것이다. 1717년(숙종 43) 당시에 사고의 운영에 관한 응원(應元) 등의 상소문이 『사고절목(史庫節目)』 속에 남아 있는데, 그에 따르면 사고에는 화재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봄·가을로 20명씩 수직(守直)을 세워야 한다는 것과 그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어야 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
1914년 3월 3일 조선총독부에 의해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들이 모두 일본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되었다고 한다. 이 실록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때 소실되어 버렸고, 그 전에 외부에 대출되었던 45책만 무사하였다. 그 가운데 27책이 1932년 경성제국대학에 이관되어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고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1961년에 비구니 뇌묵(雷默)이 절을 중건한 뒤 사고사라고 하였다가 그 뒤 다시 본래의 이름인 영감사로 바꾸었다. 당우로는 본당인 5칸 규모의 원통전(圓通殿)과 요사채가 있다.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의 좌상을 안치하였다. 원통전의 뒤에 있는 평창 오대산사고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또 옛 영감사지는 그곳에서 남쪽으로 3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지금은 수수밭으로 변하였고 초석들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