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말에 습유(拾遺)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면, 저자 생존시에 이미 자신의 시편들을 정리하고 편집해 놓은 것을 그가 죽자 후인들이 이를 보완하여 필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8권 4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정확한 편집·필사연도는 알 수 없다. 서울대학교 고도서로 전하고 있는 『삼명시초(三溟詩草)』(1책 15장)에서 강준흠이 북경(北京)에 갔을 때에 그곳의 문인인 심곡(心谷) 비란지(費蘭墀)에 청한 서문이 1805년(순조 5) 쓰여져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삼명시집』 권1에 시 194수, 권2에 188수, 권3에 「연행록(燕行錄)」을 포함 180수, 권4에 「고악부(古樂府)」·「해동악부(海東樂府)」를 포함 172수, 권5에 213수, 권6에 「한경잡영(漢京雜詠)」을 포함하여 163수, 권7에 「금강록(金剛錄)」을 포함하여 205수, 권8에 <습유>를 포함하여 192수 등의 모두 1,507수가 수록되어 있다.
<해동악부> 30수는 고대 삼국시대의 설화들을 전통적인 해동악부체(海東樂府體)의 창작원리를 사용하여 지은 것이고, 「한경잡록」 40수는 19세기 서울의 지리적 상황과 도시적 분위기를 소주(小註)를 첨가하여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금강록」과 「연행록」은 금강산 유람과 연행의 도상에서 각처의 명소와 경물을 기행문학적 차원에서 시화해 놓은 것이다. 「연행록」 중에 「안시성(安市城)」 2수와 「북경(北京)」 16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삼명시집』에서 주목할 만한 시의 특징은 우리 역사와 풍토·지리에 대한 애정과 정조(情調)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삼명시집』 이 외의 많은 시편들에서 강준흠이 옥당(玉堂) 재임시절에 교유했던 문사들과 홍석주(洪奭周) 주변 인사들이 등장하고 있고, 남인계 문인 목만중(睦萬中)·채제공(蔡濟恭)·정범조(丁範祖)·신광하(申光河)와 주고받은 작품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정조 말년에서 순조 초년 사이에서 남인계를 대표할만한 시인 중의 하나로 평가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