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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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개념
통도사 · 해인사 · 송광사로 각각 불 · 법 · 승을 상징하는 불교건축물. 총림.
이칭
이칭
총림(叢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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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통도사 · 해인사 · 송광사로 각각 불 · 법 · 승을 상징하는 불교건축물. 총림.
내용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海印寺),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松廣寺) 셋을 가리킨다.

삼보는 불교의 신행 귀의대상인 불(佛) · 법(法) · 승(僧)을 가리키는 말로서 통도사가 불, 해인사가 법, 송광사가 승에 해당한다.

통도사는 자장(慈藏)율사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창건한 절이다. 그는 불경과 주1를 가지고 귀국하였는데, 주2를 봉안할 목적으로 이곳 통도사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조성하였다.

그는 주3이 되어 이곳 통도사의 금강계단에서 주4의 기강을 바로잡았다고 하는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여 통도사를 불보사찰(佛寶寺刹)이라고 한다.

영원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상징하는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통도사의 주법당인 주6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주7만 마련하였다.

해인사는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라고 해서 법보사찰(法寶寺刹)이라고 한다. 강화도에서 완성한 고려대장경은 보관의 어려움 때문에 조선 초기에 가야산 해인사로 옮겨졌다. 이곳은 풍수지리에 의하여 예로부터 승지(勝地)로 손꼽히는 곳이었고, 장경각(藏經閣)을 따로 지어 고려대장경을 안치하게 된 것이다.

송광사는 큰스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해서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은 이곳에서 주8를 도모하였다. 원래 팔공산의 거조사(居祖寺)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뒤에 송광사로 장소를 옮겼다.

그 뒤 그의 제자였던 혜심(慧諶)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까지 16명의 국사가 연이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고 하여 승보사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언제부터 삼보사찰이라는 칭호가 붙여지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이후에 쓰이게 되었다고 보인다. 오늘날 이 삼보사찰은 전통적인 승려 교육과정인 선원(禪院) · 강원(講院), 그리고 율원(律院)의 세 기능을 다 집합시켜 놓았다는 뜻에서 각각 총림(叢林)이라고도 한다.

주석
주1

석가모니의 유골.    우리말샘

주2

석가모니의 유골. 후세에는 화장한 뒤에 나온 구슬 모양의 것만 이른다.    우리말샘

주3

승군(僧軍)을 통솔하는 일을 맡아 하던 승직(僧職).    우리말샘

주4

비구와 비구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6

절의 법당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본당.    우리말샘

주7

부처를 모셔 놓은 단.    우리말샘

주8

고려 무신 정권기에, 지눌이 수선사를 중심으로 일으킨 불교계의 정화 운동. 종래의 불교계가 세속화된 것에 대한 신앙적 반성에서 출발하였으며,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통합을 추구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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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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