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3단계 시험법은 고려시대부터 실시되어 왔으나 제도적으로 정비된 것은 조선 초기였다.
대체로, 초장에는 경서(經書)를, 중장에는 시(詩)·부(賦)를, 종장에는 대책(對策) 등을 시험보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초장에 불합격하면 중·종장에 나아갈 수 없었으므로 초장에 무슨 과목을 시험보이느냐는 매우 중요하였다.
이에 초장에 강경(講經)을 할 것이냐, 제술(製述)을 할 것이냐를 놓고 조선 초기 반세기 동안 심한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경전(經典)이 무엇보다도 모든 학문에 기초가 된다고 하여 초장강경의 원칙이 굳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