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배 ()

삼족토기
삼족토기
공예
물품
백제시대에 제작된 납작한 몸체[杯身]에 다리가 세 개 달린 토기.
이칭
이칭
배형(杯形) 삼족기
정의
백제시대에 제작된 납작한 몸체[杯身]에 다리가 세 개 달린 토기.
개설

삼족배는 높이 5.0~7.0㎝, 입지름 10.0~15.0㎝ 가량으로 납작한 몸체에 세 개의 역삼각형 다리가 달린 토기로 한성기(漢城期)에 중국 서진(西晉, 265~316) 금속기 또는 자기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후 웅진기(熊津期)를 거쳐 사비기(泗沘期)까지 전 시기 동안 제작되어 백제의 대표적인 토기로 자리 잡았다. 한성기에는 뚜껑이 없는 무개식(無蓋式) 삼족배만 제작되었으며, 웅진기에서 사비기에 이르는 시기에는 뚜껑과 세트를 이룬 유개식(有蓋式) 삼족배가 생산되었다.

연원

백제의 삼족배 또는 삼족기(三足器, 세발토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 서진대 청동세(靑銅洗: 청동으로 만든 넓은 접시 형태의 그릇)와 같은 금속기를 번안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당시의 자기를 모방하여 나타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서진에서 제작된 청동기 외면의 돌대 등의 형태적 특징이 백제에서 최초로 제작된 삼족반(三足盤, 반형 삼족기, 입지름 25~30㎝)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함께 출현하는 직구호(直口壺, 입 곧은 항아리) 등 검은색 마연(磨硏: 표면을 갈고 닦아 반질반질하게 함) 토기의 출현 계기 및 시기가 유사한 점으로 보아 관련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다만, 한강유역에서 서진대 청동기의 발견 사례가 없고, 이 무렵 중국 청자 삼족반의 형태가 백제의 그것과 유사하며, 서진대 전문도기(錢文陶器: 동전무늬를 찍은 도기) 등이 백제지역에서 출토되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중국 자기를 조형으로 삼아 출현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시기별 특징

한성기에는 입지름 25~30㎝ 가량의 삼족반이 4세기 중·후반을 즈음한 시기에 먼저 등장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삼족배도 제작되어 공존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성기의 삼족배는 연질의 회색 계열 토기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회청색 경질토기로 바뀌어 경질토기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서울 몽촌토성·풍납토성, 충청남도 홍성 신금동 백제 유적 등 생활유적에서만 출토되는 특징을 보이며, 충청북도 청주 신봉동 고분군이나 충청남도 논산 표정리 고분군과 같은 5세기대 무덤에서 비로소 부장된 것이 확인된다. 삼족배의 기능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단정할 수 없으나 제사나 공헌용(貢獻用) 의기의 성격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웅진기에는 삼족반이 소멸하고 삼족배만 제작된다. 이 시기에는 뚜껑이 없는 삼족배는 거의 사라지고 어깨 부분을 좀더 각지게 만들어 뚜껑과 조합을 이룬 유개 삼족배가 성행한다. 이 시기의 삼족배는 고배와 개배 등과 함께 앞 시기에 비해 정형화된다. 입술의 높이는 높고 다리는 보다 아래에서 위로 깎아 각지게 다듬은 뒤 몸체의 중앙에 부착하는 양상을 보인다. 뚜껑은 별도의 꼭지를 만들지 않고 원만한 곡선을 띠는 형태가 유행한다. 이러한 양상은 충청남도 공주 정지산 유적에서 잘 확인된다. 공주 정지산 유적은 웅진기의 중심지 유적으로 삼족배만 출토될 뿐 삼족반의 출토 사례가 없다. 또한 이 시기에는 무덤의 부장양이 증가하는 분위기를 바탕으로 충청남도 논산 표정리·모촌리, 전라북도 익산 입점리 고분군 등에서도 삼족배가 출토된다.

사비기의 삼족배는 몸체의 깊이가 이전 시기보다 현저히 얕아지는 대신 다리 길이가 몸체보다 1.5~2배 가량 길어지고 다리가 몸체의 바깥 끝부분에 주로 부착되어 획일화·형식화된 모습을 보인다. 삼족배의 뚜껑은 굽형, 연봉형(연꽃 봉오리 모양), 원통형 등으로 다양해진다. 또 사비기의 백제 토기질이 다시 연질화되는 경향과 함께 삼족배 역시 회색 연질토기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충청남도 부여 지선리 고분군에서 확인된다. 사비기에는 전반적으로 무덤에 부장품을 간소하게 넣는 박장(薄葬) 경향으로 인하여 삼족배가 무덤에 부장되는 사례가 적어지지만, 부여 왕궁리와 동남리 건물지와 같은 중요 생활유적에서는 많이 출토되었다.

의의 및 평가

삼족배는 한성기부터 웅진기를 거쳐 사비기까지 전 시기에 등장하는 백제의 대표적인 토기 기종으로, 삼족반, 삼족호(三足壺, 원통형 삼족기) 등과 함께 삼족기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사용된 기종이다. 또한 당시 함께 제작된 고배(高杯, 굽다리접시)와 개배(蓋杯, 뚜껑접시) 등과 양식적 변화가 유사하여 백제 토기의 변화 양상을 알려주는 중요 지표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한국도자사전』(서현주·최종택 외, 경인문화사, 2015)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학연문화사, 2001)
『백제토기도록(百濟土器圖錄)』(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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