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 이름은 왕수(王琇). 아버지는 문종(文宗)이고 어머니는 인예순덕태후(仁睿順德太后) 이씨(李氏)이며, 순종(順宗)·선종(宣宗)·숙종(肅宗)의 아우이다. 이 외의 동복형제로 대각국사(大覺國師) 왕후(王煦), 보응승통(普應僧統) 왕규(王規), 변한후(卞韓侯) 왕음(王愔), 금관후 비(金官侯丕), 낙랑후(樂浪侯) 왕침(王沈), 총혜수좌(聰慧首座) 왕경(王璟) 등이 있다.
1071년(문종 25) 개부의동삼사 검교 상서령 수사공 상주국 평양후(開府儀同三司檢校尙書令守司空上柱國平壤侯)로 봉해지고 식읍일천호(食邑一千戶)를 받았으며, 1073년 왕이 중서시랑(中書侍郎) 김행경(金行瓊)과 위위경(衛尉卿) 이정공(李靖恭)을 상서성에 보내어 책봉하는 예식을 행하고, 아울러 인수(印綬)·의대(衣帶)·안마(鞍馬)·필단(匹段)·은기(銀器)·포화(布貨) 등의 물건을 내렸다.
그런데 1086년(선종 3) 상안후(常安侯)로 나오는 것을 보면, 1071년과 1086년의 사이에 평양후에서 그 명칭이 상안후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해 수사공(守司空)에서 수사도(守司徒)로 바뀌고 식읍 2,000호를 주었으며 상안공으로 승진시켰다.
1094년(헌종 즉위년) 수태보(守太保)에 올랐다.
시호는 영량(英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