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 ()

상월
상월
불교
인물
해방 이후 대한불교천태종을 창종한 불교인.
이칭
원각(圓覺)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1년
사망 연도
1974년
본관
밀양(密陽)
출생지
삼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대한불교천태종을 창종한 불교인.
개설

속명은 박준동(朴準東).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원각(圓覺). 상월은 법명. 영진(泳鎭)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삼척 김씨(三陟金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삼척에서 태어나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명산을 찾아 수도하였다. 견문을 넓히고자 중국을 여행하며 문수보살의 상주처인 오대산(五臺山)과 관음보살의 상주처인 보타락가산(普陀洛伽山), 보현보살의 상주처인 아미산(峨嵋山) 등을 순례하고 서장(西藏)의 불교 성지를 돌아본 뒤 귀국하였다.

1946년 정월 소백산의 연화지(蓮華地)에 초암(草庵)을 짓고 정진하였다. 6·25전쟁 때는 공주 마곡사(麻谷寺)에 머물렀는데, 이곳에서 자비로써 사람들을 교화하고 악성 질병에 신음하는 난민들을 구호하여, 주민들로부터 신승(神僧)으로 추앙받기도 하였다.

휴전 후 다시 옛 초암으로 돌아와서 천태지관(天台止觀)을 닦다가 공삼매(空三昧)를 체득하고, 1962년 12월 대오(大悟)하였다.

그 뒤 중생의 교화를 발원한 뒤 먼저 병을 고치고 액을 없애며 흉함을 피하고 길함을 취하는 방법으로 영험을 보임으로써 많은 신도들의 호응을 얻었다.

수년 동안 그를 따르는 신도가 수만 명에 이르게 되자 회삼귀일(會三歸一)·원융삼제(圓融三諦)로써 국토 통일의 이념을 삼고 진속불이(眞俗不二)의 법화교지(法華敎旨)로써 생활불교의 지표로 삼아, 1967년 1월 새불교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천태종을 창종하였다.

그 뒤 단일 사찰로서는 전국 최대 규모인 천태종의 총본산 구인사(救仁寺)를 창건하였다. 종단운영·중생교화·중창불사 등으로 인한 과로로 병을 얻어서, “죽고 사는 것이 본래 공적(空寂)”이라는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1974년 4월 64세로 입적하였다.

불교의 전통예식인 다비(茶毘)를 행하지 않고 구인사의 주봉 석강(石岡)에 봉분하여 안장한 뒤 적멸궁(寂滅宮)이라 하였다. 대표 제자로는 남대충(南大忠) 등이 있다.

참고문헌

「천태종중창조상월원각대조사비문(天台宗重創祖上月圓覺大祖師碑文)」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위석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