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해 삼남(三南)지방 민란의 영향으로 일어났다. 제1차봉기는 5월 15일 수 미상의 농민군이 삼정개혁(三政改革)을 부르짖고 일어나, 읍내로 몰려가 반호(班戶)와 민가에 잇따라 방화하였다.
제2차봉기는 5월 26일에 일어나 부호(富戶)와 서리(胥吏)의 집들을 불태웠는데, 전후에 불탄 집이 100여호이고, 또 관아의 문부(文簿)ㆍ등록(謄錄) 등도 불태웠다.
조정에서는 경상도관찰사 이돈영(李敦榮)에게 난의 수습을 명하여, 정나구(鄭羅九)를 수창죄(首倡罪 : 앞서서 민란을 주창한 죄)로 효수(梟首)하고, 김일복(金日福) 등 4인을 원배(遠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