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11일이의순(李義橓) · 최서경(崔曙卿) 등 10여 명이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租界) 안에서 남성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이에 맞추어 여성들도 적극 가담, 독립운동에의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함을 역설하고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의 항일독립투쟁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상해를 비롯한 인근지역의 한국여성을 모아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둘째로, 회원 50여 명이 매일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상해시내를 비롯한 인근지역까지 감시망을 피하여 다니면서 신명을 바쳤다.
셋째로, 중일전쟁 중 19로군(路軍) 부상장병을 위로, 간병하는 등 군인들의 사기진작에 큰 활동을 전개하였다. 넷째로, 상해시대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흩어진 민심을 임시정부 중심적 체제로 모으는 데 기여하였다.
1932년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虹口公園) 의거 후 임시정부가 상해를 떠날 때 행동을 같이하면서 계속 임시정부와 임시정부요인 이동녕(李東寧) · 김구(金九) · 이시영(李始榮) · 조소앙(趙素昻) 등을 뒷바라지해주었다.
임원을 보면 집사장(執事長)에 이의순, 집사에 최서경 · 최덕행(崔德行) · 김현숙(金賢淑) · 정이환(鄭利煥) 등이었다. 1940년 이후는 활동이 침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