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송(北宋)의 정호(程顥)가 처음 사용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임성주(任聖周)가 자기 이론의 중심 개념으로 채용함으로써 그 의미가 특별히 부각되었다.
임성주 당시에 이이(李珥)의 주기론(主氣論)을 계승한 기호지역 성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의 본성[性]과 마음[心]을 각각 이(理)와 기(氣)에 분속시켜 “본성은 항상 순수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아 선(善)과 악(惡)이 함께 존재한다.”고 하는 이론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임성주는 본성과 마음을 구분하는 것에 반대하고, “인간은 누구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발적인 도덕의 실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임성주는 이와 같은 학설을 본체론적인 차원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우주의 본체는 이와 기 두 가지가 아니라, 오직 생의(生意)에 가득 찬 하나의 기가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가 성리학의 전통적인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부정하고 이처럼 일원론을 주장한 이유는, 이기이원론이 본성과 마음을 이원적으로 이해하는 시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임성주는 인간의 마음은 기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기는 종래의 성리학에서 이해해 온 잡다한 물질적 질료가 아니라 순수한 생의의 기이므로 마음과 본성을 둘로 나눌 필요가 없으며(心性 一致), 나아가 이와 기도 두 가지로 삼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理氣同實). 그는 마음의 원질인 기를 순순한 생의로 상정함으로써 일원적인 심성관과 본체관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임성주가 이처럼 일원적 본체로 삼은 ‘생의’라는 개념은 정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연원은 『주역』「계사(繫辭)」의 생철학적(生哲學的)인 자연관에로 소급되어진다. 「계사」에서는 “대 자연의 큰 덕을 생(生)이라 한다(天地之大德曰生).”고 하여 부단한 생성이 대자연의 덕인만큼, 임금이 된 자는 그 덕을 이어받아 민생을 보위하는 인정(仁政)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지켜 나아가야 한다고 언명하였다. 「계사」에 내포된 이 같은 생철학적 우주관과 그에 근거한 윤리설은 근세 성리학의 이론 체계를 구축하는데 큰 영향력을 미쳤다.
이 점은 특히 정호의 이론에서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정호는 유가의 전통적 윤리 덕목인 인(仁)과 그것이 인간 정서에 나타난 측은지심(惻隱之心) 등을 생(生)을 지향하는 의지(意志), 즉 생의(生意)로 해석했는데, 그 같은 생의는 인간의 내면적 윤리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유기적 생명체인 자연의 본질로 이해되었다.
정호의 이 같은 사상은 성리학의 집성자인 주희(朱熹)의 철학 이론 속에서도 큰 비중을 갖고 자리하게 되었다. 주희는 『주역』 건괘(乾卦) 괘사(卦辭)의 원(元)·형(亨)·이(利)·정(貞)을 자연의 운행 원리로 해석하면서, 원은 생의이고 형·이·정은 생의의 성장·완성이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그것을 다시 인·의·예·지 등에 일치시킴으로써, 인간의 대표적 윤리 덕목의 존재근거가 자연과 인간을 관통하는 생생(生生)의 원리에 있다고 한 정호의 사상을 계승하였던 것이다.
생의를 본체로 삼은 임성주의 철학은 결국 『주역』「계사」로부터 정호를 거쳐 주희에 이르는 이 같은 생철학적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주희에게 우주적인 생의는 원리적인 이(理)로서 설명되어졌던 데 반해, 임성주에게서는 원기(元氣)·호기(浩氣)·태허(太虛) 등의 이름을 가진 기(氣)의 내용으로 이해된 것이 양자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임성주는 인간의 마음이 순수한 도덕성과 활발한 역동성을 함께 가져야만 자발적인 선의 실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을 이루는 기가 본체에서 현상에 이르기까지 순수성과 역동성을 일관되게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본체를 일원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생의에 가득 찬 기’라고 정의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