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 추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어떤 모음의 조음 영역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하겠지만, 그 모음의 조음 영역이 이동한 바로 그곳에서 이미 다른 모음이 발음되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모음의 조음 영역이 이동함으로써 조음 가능 영역에 빈 곳이 생길 수도 있는 등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한 언어의 모음들이 연쇄적으로 조음 영역의 변화를 겪는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국어의 경우, 어떤 자료에 근거하느냐에 따라 모음 추이의 시기에 대한 견해가 갈리는데, 대체로 12세기 이전에 일어났다고 보는가 하면 13세기 이후에 일어났다고 보기도 한다.
우리말의 발음이 분명하게 문증되는 15세기 국어가 7모음 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국어의 모음 추이에 대한 논의도 7모음 체계를 출발점으로 삼아 왔다. 그리고 그 일곱 개의 모음은 /ㅣ[i], ㅜ[ʉ], ㅗ[u], ㅓ[e], ㅡ[ə], ㆍ[ɔ], ㅏ[a]/였을 것이라는 추정―예컨대, ‘어미(母)’라는 말이 당시에도 있었다고 하면 그 발음은 지금과는 달리 [emi]와 같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말이 알타이 제어들과 같이 8모음 체계에서 출발하였으되 /ï/가 소실된 이후라고 한다면, 이들은 /ㅣ[i], ㅜ[ü], ㅗ[u], ㅓ[e], ㅡ[ö], ㆍ[o], ㅏ[a]/와 같이 원순 모음 넷을 지니고 있었으리라 추정할 수도 있다. 물론 후자의 모음 체계라 할지라도, /ㅜ[ü]/와 /ㅡ[ö]/는 음운론적으로는 전설 모음이지만 음성적으로는 중설 원순 모음인 [ʉ]와 [ɵ]에 가깝게 실현되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모음 추이의 발단과 과정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전설 모음으로 발음되던 /ㅓ[e]/가 /ㅓ[ə]/로 중설화되면서 모음 추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언어, 예를 들어 몽고어에서도 이러한 중설화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중설화된 /ㅓ[ə]/에 의해 기존의 /ㅡ[ə]/가 고모음 쪽인 /ㅡ[ɨ]/로 밀리고, 이 /ㅡ[ɨ]/는 다시 가까운 위치의 /ㅜ[ʉ]/를 후설의 /ㅜ[u]/로 밀어내고, 다시 이것이 기존의 /ㅗ[u]/를 중모음 쪽인 /ㅗ[o]/로 밀어내었으며, 끝으로 여기에 /ㆍ[ɔ∼o]/가 /ㆍ[ʌ]/로 밀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 모음이 다른 모음의 조음 영역을 연쇄적으로 침범하는 변화는 조음 영역의 중복으로 인한 의사소통의 장애를 피한다는 언어의 기능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다.
또 다른 견해는 원순 모음이던 /ㅡ[ö]/와 /ㆍ[o]/가 체계 내적인 원인에 의해 평순 모음으로 변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ㅡ[ö]/가 /ㅡ[ə]/로 평순화한 뒤, 이미 전설과 중설에 걸쳐 넓은 조음 영역을 지니던 /ㅓ[e∼ə]/와의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ㅜ[ʉ]/ 쪽으로 상승하였다는 것이다. 밀려날 처지의 /ㅡ/가 /ㅜ/ 쪽으로 상승할 수 있었던 것은 /ㅡ/는 이제 평순 모음이 되었고 /ㅜ/는 원순 모음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조음 영역이 중복되더라도 원순성에 의해서 두 모음이 구별될 수 있었다는 점이 작용하였다고 본다. 한편 /ㆍ[o]/가 평순 모음인 /ㆍ[ʌ]/로 바뀌면서 후설의 유일한 원순 모음이 된 /ㅗ[u]/는 그 조음 영역을 중모음 쪽으로 확장하면서 점차 /ㅗ[o]/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 결과 『훈민정음해례』에서 서술된 ‘구축(口蹙)’의 대립인 /ㅡ/와 /ㅜ/, /ㆍ/와 /ㅗ/의 대립이 각각 ‘설소축(舌小縮)’ 계열과 ‘설축(舌縮)’ 계열에서 자리잡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