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소허(小虛). 대구 출신. 대구에서 보통학교를 다닌 뒤 독학으로 수채화를 그리며 대구의 양화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인성(李仁星)·김용조(金龍祚) 등 불우했던 후배에게 많은 격려와 자극을 주었고, 1928년의 영과회(零科會)와 1930년의 향토회(鄕土會) 등 양화학도들의 모임과 동인작품전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서동진은 주로 대구일원의 거리와 마을을 사생한 수채화로 일관하였는데, 수채화를 유화와 비교하여 부수적인 기법으로 여기던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중심 기법으로 다루어 발전시킨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1928년부터 1932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에 수채화로 그린 풍경화를 네 차례 출품하여 모두 입선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오후의 풍경」(1931년), 「뒷골목」(1932년) 등이 있다.
광복 후 1950년의 대구화우회(大邱畫友會)의 창립에 참여한 일을 끝으로, 화가의 위치에서 떠나 신문사 중역, 학원 재단이사장 등을 지내다가, 1954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