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는 조선조 불교의 중흥조로서 그 문도가 1,000여명에 달하였다. 조선 초기의 억불정책과 성종·연산군 등의 파불행위가 있은 뒤, 정심(正心)-지엄(智儼)-영관(靈觀)으로 이어진 선종(禪宗)의 법맥은 휴정과 선수(善修)에게 이어졌고 이들 2인의 고승 밑에 법맥을 이은 많은 문도가 생겨났다.
현재의 대한불교조계종의 승려는 모두가 그 연원을 이들 두 고승에게 두고 있다. 서산대사의 1,000여명 문도 가운데 법맥을 이은 제자는 70여명이다. 그 가운데 유정(惟政)과 언기(彦機)·태능(太能)·일선(一禪) 등의 네 제자는 그 선법을 이은 가장 대표적인 고승으로서 4대 문파를 이루었다. 그 밖의 입실제자(入室弟子)로는 인영(印英)·원준(圓俊)·법견(法堅)·해일(海日)·경헌(敬軒)·자휴(自休)·행주(幸珠)·덕운(德雲)·청학(淸學)·희감(熙鑑)·옥정(玉晶)·영규(靈圭)·처영(處英)·인오(印悟)·해안(海眼)·계오(戒悟)·영숙(靈淑)·담언(曇彦)·학린(學璘)·의형(義瑩)·은휴(隱休)·진일(眞一)·수일(守一)·설매(雪梅) 등 수십여명이 있었다.
그 가운데 인오는 선학이 탁월하였고 처영과 영규는 임진왜란 때 의승장으로 활동하였다. 이와 같은 서산문파에 의하여 쇠퇴하였던 조선시대 불교는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그리고 서산문파는 선과 교학을 함께 닦을 것을 강조하면서도 선의 우위를 주장한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