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9년(창왕 2) 전지춘주사(前知春州事)로서 관물(官物)을 도용(盜用)하였다 하여 사헌부의 요구에 따라 국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 등과 같은 입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1390년(공양왕 2) 대간(臺諫)들이 이색(李穡)·이림(李琳) 등을 탄핵하였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모두 사직하였고 수령으로 좌천된 일이 있었는데, 이 때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있다가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로 좌천되었다. 그 뒤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